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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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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13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요4:27-38

 

“내가 그로라”, 이 선언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엄청난 충격이자 특권이었다. 예수께서는 아직 제자들에게마저 자신이 메시아라고 공개적으로 밝히신 적이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하필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장 먼저였을까? 그것도 그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찜찜한 여인 아닌가? 아마 이 여인이 예수님을 처음에는 ‘낯선 유대인’으로 알았지만 다음에는 ‘야곱과 비슷한 자’로, 또 다음에는 ‘선지자’로 여기다가 드디어 ‘타헵’(사마리아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으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했지만 주의 일에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수 있다.

여하튼 너무 놀라운 만남이었기에 흥분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이 여인은 물동이도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갔다(28절). 모리스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갔다는 것은 그녀가 받은 깊은 감동의 표시”라고 했다. 일부러 피해 다녔던 동네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며 “이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한다(29절).

‘내가 행한 모든 일’이 어떤 일들인가?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해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 그런데 그 치욕스러운 자기 과거를 꿰뚫고 적나라하게 지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미움과 서러움은커녕 북받치는 흥분과 감격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제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과거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이는 ‘내게 오라’하신 예수님의 또 하나의 초대 형식”이라는 스트라찬(Strachan)의 해석대로라면 예수님 앞에서 완전 치유되었기에 이제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한편 음식을 구하기 위해 동네로 갔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1:1로 대화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유대인 랍비가 여성과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J.R.힐은 제자들이 놀란 이유를 당시 사회가 ‘율법의 말씀을 여자들에게 주느니 차라리 불태우는 것이 낫다’는 랍비들의 말이 유행일 정도로 여자의 지위가 낮았던 것을 들기도 했다.

여기서 문제는 제자들의 관심이다. 본문의 흐름을 볼 때 그들은 영혼 구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로지 빨리 먹고 출발해서 목적지인 갈릴리로 가는 것밖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 빨리 드시라고 재촉한다. 반면에 제자들이 영혼에 대한 관심 없이 동네를 다녀온 것과 달리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영혼에 대한 관심 때문에 동네로 달려갔다. 그녀의 외침은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와서 이 사람을 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초대한 것이다. 고든(S.D.Gordon)은 “예수님과 더 장시간 함께 했고, 더 잘 아는 사이였던 제자들은 고작 ‘떡’을 들고 왔지만 이 여인은 동네에 가서 ‘사람들’을 불러왔다”고 했다.

30절을 보면 여인의 초대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이는 ‘사람들이 마을에서 나와 계속 예수께로 오고 있다’는 생동적인 표현이다. 상상만 해도 감동적인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35절)며 추수의 시급성 강조하셨다.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이다. 드디어 구약의 선지자가 메시야 시대를 바라보고 그렸던 그림대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멋진 구원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지금도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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