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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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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14

 

그가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요4:39-45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절). 여기서 ‘증언하므로’는 영어로 ‘who testified’로 번역되었으나 완벽한 번역이 아니라며 모리스(Morris)는 차라리 ‘그 여자가 증거하자’로 봐야 한다고 했다. 모리스는 또 “누가 증거 했느냐는 것보다 그 여자의 줄기찬 증거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사도 요한의 진의(眞意)였다”고 했다.

하나님의 추수는 누군가가 뿌리는 복음의 씨앗으로 시작되는 것, 예수님이 주신 생수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마리아의 이름 모를 이 여인이 구원의 감격 속에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씨를 뿌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동네에서 영향력이 있었다면 거저 악 영향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이 여인의 증언으로 사마리아에 많은 영적인 열매와 추수가 이어졌다는 것은 이 여인의 영향력이라기보다는 그 씨앗이 지닌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라이트풋(Lightfoot)은 “사마리아 여자가 증거한 그 한 마디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었지만 당장의 목적을 성취하기에는 충분한 것이 되어 다수의 동네사람들을 불러냈고, 예수를 믿게 한 것”이라고 했다.

성경은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 전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과 형편이 좋아지면 그때부터 전도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만 이 여인의 즉각 전도가 아름답다. 완벽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다. 전하는 자가 부족해도 복음은 완벽하다. 그래서 전도의 실패는 아예 전하지 않는 것일 뿐, 전하기만 하면 된다. CCC에서는 “성공적인 전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 한다. 은사가 있든 없든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참해야 할 주님의 명령이다.

사마리아의 결신자들은 새로 발견한 예수님과 바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함께 유하시기를 청했다. 여기서 ‘청하니’라는 말은 지속적인 개념의 시상, 그들이 예수님께 간청했다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다가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대하16:9)고 하신 말씀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귀하게 받아들여 이틀을 유하며 그들과 더 깊이 만나주셨다. 갈급한 영혼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으셨다는 말이다.

성경은 그 결과 믿는 자의 수가 더욱 증가했고, 그들의 믿음의 질이 달라졌다고 했다(41-42절). 42절의 ‘믿음’과 39절의 ‘믿음’은 질(수준)이 다르다. 39절의 ‘믿음’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 그 사실에 동의한 수준이라면 42절의 ‘믿음’은 함께 이틀을 보내며 체험적으로 알게 된 예수님, 그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Savior)로 고백한 진정한 믿음이다. 그들은 당시 여호와께만 하던 ‘구주’라는 고백을 파격적으로 예수님께 한 것이다. 만일 여인의 행실만 따지고 비난만 했다면 결코 하지 못할 고백이다. 그들은 이제 간증을 듣고 ‘호기심으로 달려온 정도의 믿음’이 아니라 ‘말씀으로 다져진 믿음’을 갖게 됐다. 그렇다. 간증도 중요하지만 말씀으로 다져져야 한다. 거저 들은풍월로 적당히 유지하는 신앙생활에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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