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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시대의 종언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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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시대의 종언을 향하여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도가니는 뜨겁고 뜨겁게 달구어 금속을 녹이는 기기를 말한다. 도가니는 펄펄 끓은 용광로에서 나오는 맹폭 열기가 살을 태우듯 뜨겁고 목은 갈증으로 타오르게 한다. 그 이미지는 살인적 열기, 생명을 삼켜버리는 악마적 폭력성,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현기증, 그리하여 기분조차 몽롱해진다. 도가니의 음산한 분위기는 몇 년 전 소설과 영화로 우리에게 다가온 적이 있다. 평화로워야 할 5월에 도가니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오월은 대지에 화려했던 꽃들이 하나둘 씩 이파리를 떨구고 푸르고 푸른 초록바다가 산천을 물들이는, 이른바 계절의 여왕이 등장하는 시간이다. 라일락 향기가 바람결에 사라지고, 조금 있으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아침 대지를 훤히 채울 것이다. 이처럼 우리 대한의 산천은 아름다운 생명의 향연이 번져가는데, 도가니가 왠 말이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내적으로 지금 너무 뜨겁다. 올해 12월에나 만나게 될 대통령 선거는 반년이나 앞당겨져, 5월 9일로 다가왔다. 선거벽보에 이름올린 대선 후보만 15명, 후보 단일화 명분으로 누군가 후보 사퇴하기는 하겠지만, 대선 후보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다. 거리는 후보들의 유세 함성과 유권자들의 환호로 뜨겁다. 노이즈 마케팅이 무색하게, 막말이나 폭언, 명예훼손에 버금가는 흑색 폭로전도 불사하는 판국이다. 선거에 이등은 없으니 도가니가 따로 없다. 대선 열풍이 뜨거운 도가니 열기가 되어 국민에게 밀어닥친다. 냉정하게 견지해야할 순수이성마저 어느 새 후끈 달아오른다. 잘못 하다가는 실천이성이 왜곡될 수 있다. 정신 바짝 차려야할 시점이다.

문제는 도가니가 안에서만 끓어오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외세 형상이 꼭 그 도가니 같다.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팽팽하게 맞대결하는 상황이다. 분단 상황을 제외하면 구한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역사는 말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리면 미래도 없다. 한 나라의 국운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길을 찾느냐에 달려있다. 미래는 어쩌다 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반으로 창조해 나가야 한다. 역사를 찾는 국민에게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나라 안팎이 뜨겁다. 안으로는 대선으로 끓어오르는 도가니 속에 있는 형상이고, 밖으로는 외세 충돌이 역시 뜨거운 도가니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 느낌이다. 도가니 열기 속에서 수동적, 피동적인 자세로는 존재도 없이 녹아버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 당당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고삐를 쥐어야 한다. 도가니 속에서 녹아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찬란한 정금처럼 존재의 빛을 발할 것인가. 국민의 존엄한 선택이 역사 앞에서 그 길을 가를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타오르는 도가니 시대, 이제는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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