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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문화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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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문화상품이 아니다.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세계의 교회와 함께 한국 교회는 2017년을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기념하고 있다. 수많은 교회, 단체, 학회들에서 기념집회들이 개최되는 가운데, 종교개혁 정신을 다시 성찰하며 어떻게 교회와 성도들의 삶, 그리고 사회 적용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심한다. 과연 종교개혁 정신을 어떻게 첨단화된 이 현대 사회에 변혁의 디딤돌로 사용할 수 있을까.

대표적으로 기독교방송 CBS는 “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란 슬로건으로 종교개혁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새로움을 지향하는 이 표어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어두운 실상이 있다는 것이다. 적폐는 정치 영역에만 해당되는 용어는 아닐 것이다. 빈부의 격차에 의한 양극화, 보이지 않는 사회 계층화(학력, 재력, 지연, 인맥 등), 비정규직 확산,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갑질사회에서 맞는 심리 충격, 저출산과 고령화, 세대간 갈등과 화해, IT의 생활화로 인한 비인간화 경향,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급속한 산업구조 변화 등등. 한국인의 기본 정서 저류에 흐르고 있다는 한(恨)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 현재라 하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개혁을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오백년 전의 개혁 정신을 지금 여기에 사회 변혁의 기치로 다시 불 붙일 수 있는가? 그것은 혹시 어떤 종교적 맹신 같은 것은 아닐까. 루터는 당시 교계의 왜곡과 만용에 반박성명을 발표하였다. 95개조 토론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우리 시대에 비교하자면 적폐청산을 위한 토론주제라 하겠다. 종교개혁은 신앙의 영역에서 시작하였으나 그 범위는 일상생활, 사회에까지 확산되었던 개혁운동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종교개혁 정신은 기독교인들부터 철저하게 반성과 회개 운동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기념예배, 기념세미나, 기념학회, 기념여행 등은 문화상품이 될 수 없다. 진정한 개혁이 따르지 않는다면 종교개혁을 단지 소비할 뿐이다. 종교개혁은 결코 문화상품이 아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물이 될 수 없다.

루터, 칼빈, 츠빙글리로 대표되는 종교정신이 지금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저 개혁 전선에 나서야 한다. 루터는 반대파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당하여 피신하는 생활을 해야했고, 칼빈 역시 도시를 전전하며 피난의 삶을 살기도 했다. 츠빙글리는 개혁반대파와 전투를 벌이다 목숨을 바쳤다. 개혁은 실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지난한 사역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정의, 질서와 공의, 진정한 평화가 이뤄진다면, 그 정신에 감동된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라면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보름스 의회를 마치고 나온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오, 주님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추상같은 권력 앞에서 담대하게 외친 그 심장은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령과 말씀에 충만한 상태였을 것이다. 오 주님, 저희로 성령으로 충만(엡 5:18)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하옵소서(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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