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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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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의 신학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7월 첫째 주를 지나가는 시기, 장대비가 내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햇살이 오랫동안 비치면서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대지는 가물고 저수지며 실개천, 강까지 메말라갔다. 심지어 물고기들이 숨조차 쉴 수 없어 숨져가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소실을 안타까워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하늘이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가 이러했을까 할 정도로 하늘은 비를 쏟아부었다. 아열대성 국지성 폭우다.

사람들은 땅이 가물고 메말라 갈 때 원망했다. 어쩌자구 하늘이 비를 이토록 안주신단 말인가. 예전 같으면 임금을 원망했을 터였다. 임금부터 기우제에 나와 자신의 부덕을 한탄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이제 그 가뭄이 폭우로 바뀌어 하늘이 비를 쏟아부으니 또한 원망이 자자하다. 기상청이 (고가의 첨단장비에도 불구하고) 오보했다, 정부가 재해 대책을 소홀히 했다 등 원망이 터져나온다.

자연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 믿음의 백성들은 어찌해야 하나. 원망에서 시작하여 원망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급수와 배수 시설이 잘된 도시에서 자연 재해와 별 관계없이 살아가니 무관심할 것인가. 믿음의 선진들도 자연과 환경 변화에 민감했다. 성경에 나오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그들도 우리처럼 원망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반응이 달라 보인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에서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초점을 맞춘다. 인내하고 감사했다. 가뭄과 폭우 사이에서 원초적 인간 감정인 원망이 표출되기 보다, 섭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현대로 보자면 어떤 모습일까. 급격한 환경 변화 사이에서 현대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비가 언제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확정성으로 인한 불안에 휩싸여 있는 그런 모습은 아닐까. 가뭄과 폭우 사이에서 당황하는 인간의 모습일까. AI와 4차 산업혁명으로 몰려가는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인간의 위상”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세상이 온다면 정작 “그 인간”은 어디에 위치해야 할까. 현재 우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에 존재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안과 초조는 극에 달하게 되고, 언젠가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현재와 같이 원망으로 가득하게 된다면 말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분명 은혜의 소산이다. 문제는 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를 지나는 우리의 자세이다. 비소식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 역사와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초점을 맞추고, 감사함과 경외함으로 그 분께 나아가야겠다. 섭리의 중심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영혼이 원망을 이기고, 끝내는 믿음의 승리를 안겨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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