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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향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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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향한 용기

성탄절과 새해 사이에서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성탄절을 맞아 반가운 인사가 만발한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지상의 삶은 어떨지라도 이 순간 임하는 절대 평화는 거부할 수 없다. 아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은혜를 누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성탄(聖誕)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것을 축하하는 절기다. 축하의 근거는 무엇인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인간으로 오신 구원자, 성육신은 인간이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건이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뵈온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우리 곁에 오신 것이다.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이다. 아니 우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 내려오신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하나님께서 그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것도 치욕의 십자가에 오르시기 위하여! 그러니 어찌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을까. 파스칼은 ‘저 우주의 광대한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주님의 절대적 사랑이 우리를 전율케 한다’고 고백해야 하리라!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본다. 성경이 예언한대로 주님이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원을 “다 이루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이 땅에 평화는 어디 있는가. 성탄 인사와 함께 모든 소란과 다툼이 해결되었는가. 성탄으로 인한 휴전이 끝나면 세계 어느 구석에선지 다시 전쟁과 테러와 사건과 사고가 또 터지지 않을까. 나와 이웃이, 나라가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실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지상에서 영원히 추방할 수 없을까. 새해라고 달라질 것인가. 이미 2018년도 달력을 앞에 놓고 수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과연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성탄절을 지나 새해를 향해 가며 우리가 진정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날의 얄팍한 행복인가, 아니면 영원한 존재를 기반으로 한 은혜의 삶인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막 10:38). 그렇다. 우리는 정작 무엇을 구해야할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인생이 부평초(浮萍草) 같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제는 확실하다. 주 하나님께서 성탄으로 우리에게 삶의 확실한 근거를 주셨다. 그러니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골 2:7) 가지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삶이다. 존재의 흔들리지 않는 근거이며 실존의 의심할 수 없는 확신이다. 새해 새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믿음의 갑옷을 입었으니 내일의 모든 위기와 불안은 담대히 극복해 나가자. 새날이여 오라, 존재의 용기로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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