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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단절해야 할 것인가 계승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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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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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구 박사

 

역사, 단절해야 할 것인가 계승해야 할 것인가?

 

현 정부의 ‘적폐청산’의 구호가 한창이다. 여기에는 개혁에 대한 강한 당위성이 있고 명분이 있다. 뜨거운 열정과 신념이 있다. 일부 언론은 반박 못할 정연한 논리성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의 수긍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정부와 여당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과거 정부에서도 배울 것이 있고 계승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권면은 적폐로 규정되고 외면된다. 그리고 그런 외면이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친다. 그렇지만,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서, 과거와의 일방적 단절은 새로운 갈등과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역사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대통령이 내세웠던 인물 중 하나가 도산 안창호였다. 그것은 안창호가 과거 역사와의 단절을 강하게 부르짖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산은 조선왕조 500년을 비판하면서 조선 사회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위대한 유산이 적고, 오직 사색당파에 빠져 서로를 중상모략하고, 탄핵하고, 비방하고, 살육하는 사회로 규정지었다. 그런 이유로 나라를 지탱하지 못해 결국 일본에 당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주장이 지나쳐 1921년 안창호는 “한번 떠들기만 하면 독립이 될까, 혹은 한번 대포질이나 폭탄질이나 하면 될까?”하며 김좌진의 청산리대첩과 홍범도의 봉오동전투를 가볍게 보았고,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리는 것처럼, 독립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 될 만한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다”고 냉소를 퍼부었다. 역사와의 단절을 강력히 주장한 나머지, 그리고 ‘새로운 힘’을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국의 역사와 과거를 냉소하게 되었을 때, 한국 민족은 개량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생각은 도산을 따랐던 춘원 이광수에게로 이어졌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한 주장을 가장 반긴 집단이 일본이었다. 이광수가 일본으로 전향하게 된 이유이다. 단절의 의식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과거와의 엄격한 단절을 주장했을 때, 월남 이상재가 나섰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유산이 풍부하지 않다고 해도 원망하고 화를 내고 업신여기고 모욕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고 반문했다. “아무리 애국적 마음에서 나온 소리라 하더라도 자기의 부모를 경애(敬愛)하지 못하면서 어찌 나라를 사랑하겠는가?”라며 질책했던 것이다.

이상재가 보더라도, 당시 한국인들은 게을렀고, 시기와 질투, 가난과 폭력, 무분별한 모방하는 병폐가 있었다. 그런 것들이 한국을 망쳤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이 본래 갖고 있는 심성에 자극(刺戟)을 주고 교육을 하면, 한국의 사회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단절’이 아닌 교육과 ‘회복’이 개혁의 방안이었던 것이다. 이때 이상재는 기독교에 그러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복음의 내적인 것을 강화하고 실천하면 한국 사회가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도산 안창호가 과거와의 단절을 부르짖고, 외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과 전혀 다른 해법이었다.

같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임에도 두 계보는 날카롭게 대립을 했다. 비극적인 것은 이들의 갈등이 곧 서울과 서북의 지역적 갈등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힘을 합하여 일제를 극복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분열이 일어났고 언제나 민족의 난제를 따로 풀어야 했다. 과거의 사색당쟁을 지적했는데, 도산 자신이 스스로 분쟁을 일으키고 그 중심에 선 것이다. 역사는 이러한 역설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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