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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오남용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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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오남용을 경고한다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영화 <밀양>에서 한 엄마는 자식을 유괴로 잃는다. 왜 어린 자식이 이런 비극에 희생되어야 했는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상황에 여인은 절규한다. 부조리극의 한 장면보다 더 잔혹한 일에 치인 여인은 상심에 허우적거린다.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신앙에 귀의한 여인은 차츰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구원의 주님으로부터 평화를 얻게 된다. 이제 여인은 자식의 살인자를 용서하러 교도소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갔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듣는다. 자식을 죽인 살인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주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분은 저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마음이 평온합니다.’

여인은 여기서 다시 무너진다. 살인자가 용서를 구해야할 사람은 바로 피해자이자 희생자인 자신이다. 그런데 어디서 용서를 받았다고? 어떻게 피해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살인자인 당신을 용서해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어떻게 나에게 용서해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용서받았다는 것인가? 나를 제쳐놓고 용서해주는 당신은 또 누구이며, 나 없이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당신은 제 정신인가? 여인은 혼란스러워한다. 신앙의 본질마저 의심하게 된다.

최근 벌어진 서모 검사의 미투 폭로는 <밀양> 상황과 유사하다. 자신에게 성적 폭행을 가한 가해자가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며 눈물을 흘리며 간증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가해자인 안모 검사는 피해자인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피해자를 제쳐놓고 어디에서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았다고 믿고 있는가? 이 비겁하고 용렬한 행위에 폭로를 결심하게 되었다 한다. 회개가 전혀 오해된 것이다.

너희가 아편을 아느냐. 이런 회개야말로 종교적 아편임을 알지 못하느냐. 누가 이런 회개를 진정한 회개라 하더냐. 살인자의 회개, 안모 검사의 회개는 자기기만이요 자위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회개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처받은 피해자 앞에 가서 철저하게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과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다. 회개라는 이름으로 연출된 이런 행위는 자기 회피요 연극일 뿐이다. 준엄한 공의의 심판으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치려는 겁쟁이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1987>의 고문기술자들을 기억한다. 그들 중 누구는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도 회개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정말 구원의 주님이 인정하시고, 피해자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용서를 받았을까. 아니 피해자들 앞에서 무릎 꿇고 진정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는가. 그렇지 못했다면 회개는 없었으며, 용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아야 할 것이다. 범죄 행위에 대한 용서가 없다면 사건은 아직 종결된 것이 아니다. 땅에서 피가 부르짖느니라.

회개는 종교 형식으로 이뤄지는 통과의례가 아니다. 회개는 범죄를 저지를 자신을 철저하게 깨부수는 뼈아픈 자기부정이며 옛사람의 파괴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에게뿐 아니라, 자기 범죄의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회개를 우스운 놀이로 타락시켜선 안된다. 회개를 종교적 아편, 신앙인을 호도하는 아편으로 전락시켜선 안된다. 만약 그런 행동을 감행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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