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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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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죄!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미투운동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태평양 건너 헐리우드, 워싱턴에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노출되고 있는 미투 관련 진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은 미투와 관련해서 보자면 한국 사회 윗물이 그동안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윗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윗물은 단지 연령대로만 분류할 것이 아니다. 미투신드룸을 살펴보자면 윗물은 분명 권력(Power)과 연관 지어져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윗물이다. 그것은 직위일 수 있고, 재력일 수 있고, 또 다른 그 어떤 영향력을 가진 부류가 될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구조 속에 권력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권력에는 전제가 따른다. 정의와 공의이며, 공익이다. 선진국이라는 이름은 권력이 적재적소에서 균형 잡힌 상태로 작동될 때 얻는 명예이다. 부정부패가 일상이 되는 사회, 권력이 한 두 사람에 의해 독점되는 독재사회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는 적폐청산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며, 역사 발전을 위해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과정이다. 포퍼(K.Popper)가 지향했던 “열린사회”는 정의로운 권력에 달려있다. 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곧 악마적 권력이다. 이런 권력을 자행하는 이들이 미투에서 폭로된 윗물들이며, 악마적 권력에 취해버린 좀비들이었던 것이다.

이제 미투운동이 기독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미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진다. 그런데 가해자는 악마적 권력을 행사한 윗물들이며, 대부분 남성이다. 이 폭력에 상처입고 신음하는 피해자들은 여성이다. 이 현상은 이미 오래전 한국 기독교계에 폭로되어 왔다. 수많은 미디어가 교계지도자들의 성추문, 성폭력 문제를 다루어왔다. 사회에서는 미투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이들이 책임지는 자세로 공직에서 사퇴하며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일부 교계지도자들은 오히려 정반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벌백계해야할 교계기관은 심리를 지연시키고, 심지어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미투의 가해자들로 폭로된 이들이 버젓이 교회를 담임하고, 설교하고 간증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살펴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교회 안에서 권력을 가진, 윗물 된 자들이 교회를 피난처로 여기며 찾아온 이들에게 오히려 난폭한 권력을 휘둘렀다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에도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행태에 대해 이렇게 진노하신다. “가증히 여기는 바요...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미투운동은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부르짖음이 땅에 가득하였다는 것을 증거 한다. 교회 안에도 이러한 희생자들의 고통이 부르짖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당사자와 교회 앞에 진정한 사죄와 책임지는 행동으로 속죄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회복할 수 있게 사랑으로 더욱 품어주고, 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과 악마는 추방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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