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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쐐기를 내리꽂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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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지금 대한민국은 분주하다. 우리나라 과거 역사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발걸음이 시도되고 있다. 거대한, 위대한 행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구한말, 개화기, 일제 식민지, 해방, 남북 분단, 625 전쟁, 419 혁명, 군부독재를 지나 민주화로 걸어온 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때에 남북이 이렇게 대화의 자리로 나선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남북은 이데올로기를 방패 삼아 서로 정권 유지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꼼수는 북풍(北風), 총풍(銃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시대의 국가수반보다 더 분주하다. 동분서주, 그야말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평화와 통일, 아시아 및 세계 평화를 위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초기에는 코리아패씽으로 폄하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대장정에 이르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이번 정권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노력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다시 한번 민족의 융성과 대격변을 창출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한민족 역사의 개벽을 소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그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건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다. 이를 정점으로 정권 보좌진들의 물밑 전략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영화 제목처럼 은밀하고도 위대한 협상들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바는 평화이다. 평화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미 작정해 놓으신 역사의 DNA이다. 성경은 창조의 시각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증언하고 있다. 평화는 양면성을 갖는다. 창조주 하나님의 작정에 사랑과 평화가 그 본질로서 내재되어 있지만, 평화는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죄로 인해 곳곳에서 사랑이 왜곡되고, 평화가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인 인생들은 평화 정립을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 자국이기주의도 내려놓고, 상호호혜주의를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나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표현이 시사한 바다. 평화는 거대하게는 국제적 담론이지만, 세밀하게는 개인의 삶에 관계하는 실제적 주제이다.

예전 “서울 불바다”설이 얼마나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 주었는지 모른다. 장사정포와 핵으로 무장한 중장거리 미사일이 얼마나 국내, 국제 정세를 요동시켰는지 삼척동자도 다 느끼는 바였다. 그런데 이제 변화가 확연히 보이고 있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핵무기 앞에서 평양 물냉면은 먹방을 모방한 우스꽝스런 연극이며, 장사장포 앞에서 연예공연은 한낱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소인배적 응석이랄까. 아니면 정적들의 어깃장이랄까. 역사는 심각한 국제 관계도 때로 사소해보이는 매개들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중국과 미국의 냉전을 풀 수 있었던 “핑퐁”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탁구공이 뭘 할 수 있겠어? 라고 비아냥거릴 것이 아니라, 탁구공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의 전환이 요구된다.

역사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이미 사랑과 평화를 삶의 본질로 작정해 놓으셨다.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사 32:18).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이제는 남북이 불가역적 평화의 쐐기를 박아 전쟁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서, 세계 평화의 모델이 되어야겠다. 이 역사적 위업이 우리 당대에 이뤄지기를 소원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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