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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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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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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교수

 

최근 흥미있는 번역서 한권이 출판되었다. 스위스 목회자이며 신학자인 E.트루나이젠이 쓴 <도스토옢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포이에마, 2018).

지역교회를 섬기며 성도들을 돌보고, 말씀을 전하던 목회자가 신학교수가 되었다. 현장 목회와 신학 연구가 연합하여 깊은 신학적 성찰을 낳는다. 그 과정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만난다. 어떤 의미를 만났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특이한 작가임에 확실하다. 사회개혁 운동에 앞장서다 사형을 선고 받고, 죽음 직전에서 풀려난 극단의 체험, 간질에 시달리며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육신의 고통, 경건한 종교적 내면에 멈추지 않고 꿈틀거리는 세속 욕망(도박)과 가난, 빈한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종교계(교회지도자), 정치계(귀족)의 모순 등등. 이 모든 것이 천재적 이야기꾼의 내면에서 용해되어 거대한 마그마가 분출하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게 러시아를 위대한 작가의 나라요, 사실주의 고전 중에 손꼽히는 작품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에 눈길을 준 사람은 투르나이젠 목사. 스위스의 존경받는 목회자요, 신학교수인 그가 어떻게 어둡고 음습한 배경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비평은 제2의 창작이라 하는데, 예를 들면 단테, J.번연, 괴테, T.S.엘리엇, C.S.루이스 등 기라성 같은 기독교작가들을 제쳐두고, 난해하고 ‘불경스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까. 그의 성찰을 여는 열쇠는 부제에 있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트루나이젠은 도스토예프스키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독교의 유럽 대륙에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현대의 비극을 현대인들에게 경고하고 위로해주기 위해 목회자가 잡았던 것은 무엇인가? <백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등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20세기 영적 혼란기에 방황하는 유럽인에게 비추는 거대한 거울과 비유였다. 그 현상은 바로 지옥으로 추락하는 현실이었다.

트루나이젠과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번역자 손성현 박사. 이 세 명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라!” “하나님에 대한 감각”(der Sinn fuer Gott)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비참한 인간들 안에 비치는 소망, 살인의 골목에서 소망의 대지로 끌어올려지는 희망, 어두운 대지에 드리워진 빛, 죄인들 안에서 시작되는 용서와 화해의 위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지시하고 있다는 역설(力說)이며 역설(逆說, paradox)이다. 그러므로 비참한 현실에서 은총의 현실로 나아가는 부활을 확증하고 혼신을 투여하여 부활을 지향하라. 어두운 상황에서 빛된 나라로 전환되는 치유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이 거대한 메타포와 위대한 이야기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경박해지는 시대에 어떻게 들리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남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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