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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용근 목사를 조명한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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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1939년 3월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양용근은 그해 5월 8일에 열린 순천노회 제23회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신학교를 입학한 후 조사의 신분으로 광양읍교회와 신풍리교회(애양원교회)에서 시무했으며 고흥 길두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담임목사로 시무했으며 그 후 구례읍교회로 옮겨서 순교하기까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조사로서 3년 4개월, 목사로서 4년 7개월 도합 8년 정도 목회자로 시무하였다. 특별히 목사로서는 4년 7개월 정도 밖에 시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남겨진 업적이 많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1. 광양읍교회 시무

광양읍교회는 1908년 미국 남장로회 소속 오웬(Clement C. Owen, 吳基元, 1867~1909) 선교사의 도움으로 읍내리 111번지 소재 목조 건물을 매입하여 창립예배를 드린 교회이다. 양용근은 이 교회에 1936년 1월 9일에 부임하여 1937년 3월 사임하였다. 당시의 신분은 조사였지만 담임목회자가 없어서 평양신학교를 1년 휴학하고 담임 교역자로 시무했다. 그러나 광양읍교회의 교회연혁에는 양용근의 시무가 누락되어 있고 그 당시 강병담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양읍교회에서 분리개척을 한 광양제일교회의 교회연혁에 의하면 1927년 10월 9일 강병도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했고 양용근이 조사로 사역한 기간까지 사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당시 강병도 목사는 광양읍교회와 대방교회 그리고 섬거교회의 동시 목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강병도 목사가 담임목사였지만 여러 교회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 양용근이 담임교역자로 시무한 것으로 보인다.

 

2. 신풍리교회(애양원교회) 시무

양용근이 신풍교회를 지원한 것은 신풍교회의 나환자들의 처지가 자기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었다. 나환자들도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서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양용근 자신도 이미 관동대지진 사건 때 죽은 목숨이었고 목숨은 붙어 있으나 가문도 명예도 이름도 재산도 이미 다 포기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와 같은 신풍리교회의 나환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돌볼 생각으로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나환자들의 교회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양용근이 신풍리교회에 시무할 동안 생긴 일은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일이었다.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던 그날 밤에 신학생이었던 그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동기 신학생들과 함께 방청석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울분을 토했다. 미리 배치된 일본 형사들에 의해서 회의장에서 강제로 쫓겨난 후 평양신학교 예배당으로 돌아와서 그날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회개기도와 찬송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양용근은 손양원 김형모 안덕윤 조사와 함께 앞으로 이 난국을 대처해나갈 방법을 토론하였고 그 결과 11가지 사항을 함께 결의하고 각자 노트에 적어서 잊지 않고 실천하기로 다짐을 하였다. 그 결의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우리는 순교할 각오로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대열의 선봉장이 된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목회를 한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다를 때 손해를 보더라도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는다.

3. 기복신앙을 타파한다. 찰나적 이생의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고 영원하고 참된 진리(말씀)를 추구하는 성도가 되도록 가르친다.

4. 신사참배를 결사반대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은 형이상(정신적인)의 것이나 형이하(물질적인)의 것을 막론하고 모두 우상으로 여기도록 교육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5. 이 세상의 권세는 다 무너질 수밖에 없고, 오직 예수께서 다스릴 때만 영원한 것임을 가르친다. 일제의 권세는 조만간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상을 만들어서 섬긴자들의 멸망한 모습을 구약에서 시작해서 신약시대 그리고 동,서양사를 고증해 가면서 성도들이 확신하고 용감하게 우상숭배를 반대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6. 미신 타파에 총력을 기울인다. 택일, 궁합, 토정비결, 신수점 등 기타 일체의 복술행위,자연숭배,인물숭배,동물숭배,어떤 주의에의 심취, 기복신앙 등을 하지 않도록 계몽하고 교육한다.

7.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지만 성급한 위기의식을 고조해서 사도(邪道)로 이끄는 사교에 현혹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8. 일제의 탄압정책에 희생되어 가는 동포를 그 위기에서 구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는 동포가 되도록 헌신한다. 우리 동포만이 아니라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여 구원받는 성도가 되도록 성령의 전달자가 되기에 신명을 바친다.

9. 삯꾼 목자가 되지 않는다. 사례비는 담당한 교회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 최하의 수준이 되도록 하고, 다른 교역자가 여러 가지 형편으로 보아 기피하는 교회, 싫어하는 곳에 기쁘게 가서 헌신 봉사한다.

10. 날마다 관제로 이 몸을 바치는 정성으로 산다. 스데반이 누린 최상의 복을 우리 같은 천한 종들에게도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헌신한다.

11. 즉시 각자의 교회로 돌아가서 이번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한 것은 진정한 총회의 뜻이 아니라 일제의 악랄한 계교와 탄압에 의하여 타의적으로 결의된 사실임을 널리 알리고 결코 신사참배에 동참하지 말며 기복신앙에 기울지 않도록 온 정성을 다하여 지도한다.

이런 결의문을 작성하고 다짐한 후에 양용근과 손양원 김형모 안덕윤 네 사람은 기념으로 사진을 촬영한 후에 “일사각오를 다짐한 후”라는 사진으로 남겨져 있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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