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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디케는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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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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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환 박사

 

독일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대학 앞에는 오래된 다리가 놓여 있다. 약 600년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오래된 다리라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 다리에는 저울을 든 얼굴을 가린 여신상 디케가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케는 소위 운명의 여신 심판의 여신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여신이다.

편견을 가지고 심판하지 않기 위해서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한 손으로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에는 이런 디케가 없는 것일까? 우리들의 디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사법부의 중심인 대법원에는 법의 여신인 디케가 저울을 들고 있는 상이 놓여 있다. 이 또한 법의 공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디케의 상을 조각해 놓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들의 디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자신이 판단해야 될 대상을 쳐다보며 소위 법의 심판을 가늠하기 위하여 공정한 잣대로 저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 디케는 눈을 뜨고 있는 것인가?

주변의 정치적 상황을 이리저리 살피기 위하여 두 눈을 뜨고서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 것인가? 법관은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독립된 헌법 그 자체이다. 법관이 행정부를 의식하고 국회를 의식하면 그의 정의는 편견으로 결론지어진다.

우리나라 대검찰청에는 역시 똑같은 디케가 저울을 들고 있다. 이 디케 역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디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검찰은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하나의 독립된 기관이다. 그런데 주변을 살피기 위하여 두 눈을 항상 부릅뜨고 이리저리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정세판단에 누구보다도 앞선 시각을 가진 검찰, 실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는 능력, 차기정권은 누가 가질 것인지를 알아보는 실력, 이런 것들은 검찰이 지녀야 할 사명이 아니다. 자신의 얼굴에 수건으로 가려야 이 모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가 이들에게 수건을 떼게 만들었는가? 분명 국민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디케는 더 이상 정의의 신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누가 이 디케의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 정치가 맛을 잃어버리면 종교라도 제 맛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는 유수의 많은 교회들이 있고, 또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디케의 역할을 사양한 지 이미 오래다. ‘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으로 교회불리기는 오직 나의 관심으로’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키고 정의롭게 수호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도 역시 두 눈을 뜨고 정세를 살피고 있다. 괜스레 정부의 비위를 잘못 건드리면 그동안 덮어두었던 비리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두 눈을 뜨고 얼굴의 수건을 벗어버리자고 한다. 도대체 우리의 디케는 어디로 간 것일까? 행동하는 양심은 이 나라 어디에서 어느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인가?

 

김호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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