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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구원의 기독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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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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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구 박사

 

1953년 6월 14일 종로 탑골공원에서 7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교회가 주최한 “북진통일 기원대회”가 열렸다. 다음 날인 15일에는 부산 충무로광장에서 1만여 명이 모여 “전국 기독교신도 구국대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휴전반대, 북진통일이 결의 되었다. 한국교회가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한, 공산주의를 이 땅에서 몰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기독교계의 절규였다. 이 날 한국 기독교는 한경직을 비롯해 감리교의 유형기, YMCA의 신흥우, 장로교의 배은희와 유호준을 대표로 기독교사절단을 꾸려 미국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교회와의 통로는 한국교회가 맡았다. 한국정부는 교회에 적지 않은 일들을 맡겼다. 미국교회가 갖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적극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1951년 3월 이승만 정부가 한경직과 유형기를 유엔으로 파견하기로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1907년의 전통 아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안 일 수 있는 것에, 한국교회가 적극 나선 것은 공산정권에 나라와 땅을 빼앗기면 교회의 존재 자체가 말살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6.25 전쟁을 영적전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국가구원의 차원으로 6.25전쟁을 본 것이고 개인구원의 문제와 동일시했던 것이다. 한국교회를 구국의 기관으로 각인시키는 데 앞장섰던 한경직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산주의 하에서는 자유, 인권, 생명 아무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개인의 피해의식만을 앞세워 대중을 오도 하는 일을 우리 신앙인들은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역사가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기억하고 참아야 할 때에는 참아야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할 때에는 침묵을 지키며 기회를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결연한 행동이 필요할 때에는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자세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개인구령의 신학과 한국구원의 의식을 합치시켜 장로교 통합측의 신학적 정체성으로 삼았던 한경직은 이렇게 주장했다. 교회를 개인구령의 기관인 동시에 국가구원의 도구로 본 것이다. 한국교회가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공산주의라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기독교 신앙인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주관자에게 맡기고 기다릴 일이 있지만, 결연하게 행동해야 할 때는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묘했던 것은 미국교회나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의 의식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련과 미국 간의 갈등의 본질을 유신론과 유물론의 대결로 보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적인 가치”를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6.25전쟁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이러한 영적 신념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선한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신학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명구 박사(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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