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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용근 목사를 조명한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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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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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1. 한국교회 신앙의 역사

양용근 목사의 순교는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짧은 목회 활동과 그나마 일제의 감시와 협박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랑스러울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나마 그에 대한 기록들이 소실되고 역사의 무관심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던 신앙은 위대한 믿음 앞에서 진실한 고백을 해야 하는 성도의 모범이 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며 외형적인 교회의 부흥을 성공의 빌미로 잡고 있을 때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참된 목회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에게는 동시대의 다른 순교자들처럼 화려한 기념관이나 기념사업도 없다. 그를 알리는 책이나 논문도 많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순교자 못지않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믿음이 있다. 참된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진실 된 믿음이 있다. 이 참된 믿음이 앞으로 교회 앞에 바른 모범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2. 양용근 목사의 후손들

양용근 목사가 순교할 때 그에게 2남 2녀의 자녀가 있었다. 양영욱, 양영철, 양영숙, 양영자 이 네 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들은 아직 어린 나이였다. 장남 영욱이 12세 장녀 영숙은 5세였다. 이들은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어렵게 살아야 했으나 힘든 삶 가운데서도 신앙으로 성장하였다. 네 남매는 모두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수로 재독사업가로 약사로 선교사 사모로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 특별히 장녀 영숙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93세 까지 장수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며 약사가 되어서 약국을 경영하였고 남편과 함께 충현교회 장로와 권사로 헌신했다. 특별히 어려운 교회를 도우는 일에 앞장섰고 많은 어려운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비록 한국교회가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교회를 향해 손을 내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양 목사에게는 세 명의 형님이 있었다. 형님들의 자녀들은 본인 자녀들 보다 장성하여 옥중에 있을 때 서신을 왕래하기도 하면서 작은 아버지인 양 목사의 신앙을 본받으며 자랐다. 당시의 양 목사의 영향을 받은 조카들은 대부분 재건교회를 따랐다.

재건교회는 고려파에 비해서 그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교회사가들이 별로 취급을 하지 않지만 고려파가 분리해 나가기 이전에 따로 분리해 나간 교단이다. 1948년 2월 18일 50여 교회가 경남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에서 임시 중앙위원회를 소집하고 중앙위원회 규약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예수교 재건교회 중앙위원회”이다. 재건교회의 중심인물은 최덕지였다. 출옥 성도들 가운데 “김린희 전도사, 박신근 집사 최적지 전도사는 신사참배는 물론 동방요배, 묵도, 국기배례, 국민서사시까지 극구 반대하고” 극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김린희 전도사는 3.8 이북에서 최덕지 전도사는 3.8 이남에서 재건교회를 창설하였다.

 

큰형 양용이의 둘째 딸 양영금은 시집간 김해 집에서 재건교회를 시작했고 장남 양영식은 광양군 옥곡면 대죽리에 재건대죽교회를 개척했다. 둘째 형 양용운의 장남 양영기는 양영금과 함께 재건 운동을 시작했으며 양용이가 세운 오사교회를 재건교회로 만들었다. 또 서울 성동구의 재건성동교회를 개척했으며 중구의 재건동산교회를 개척하여 건축하여 장로로 헌신했다. 양용운의 셋째 딸 양영례는 1972년 자신이 다니던 재건오사교회 주일학생들에게 국기경례는 1,2계명의 우상숭배 죄에 해당하므로 국기경례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로 인해서 광주지방 경찰청 순천지청에 구속기소 되어 재판을 받고 8개월 징역형에 집행유예 1년 6개월 선고로 구속된 지 4개월 만에 출옥했다. 국기경례를 거부한 아이들 중에는 중고등학교를 자퇴한 아이들도 있었고 초등학생들은 체벌을 받았다.

 

그 후 양영례는 결혼하여 순천에 재건순천교회를 개척하여 남편과 함께 장로와 권사로 헌신하고 있다. 큰형 양용이의 넷째 딸 양송자는 경남 하동군 갈사리로 출가하여 갈사교회(고신측)를 개척하여 권사로 봉사했다. 그 외에도 4형제의 자녀들과 그 친손이나 외손들도 재건교회에서 혹은 고신교회와 다른 교단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로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순교정신을 받들어 교회를 섬기고 있다.

 

양용근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의 정신을 목회와 설교와 재판의 판결문과 유훈을 통해서 알아보고 그 영향을 살펴보았다. 그의 목회는 당시의 형편에 따라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의 설교의 중심도 말씀대로 살 것과 우상숭배를 금하고 순교의 정신으로 살자는 것이었다. 양용근 목사가 신사참배 반대와 순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준 교훈은 결국 교회를 지키느냐 신앙을 지키느냐에 있어서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의 신앙을 본받은 후손들은 가장 철저하게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재건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면서 철저하게 신앙을 지키려고 했고 다른 교단의 교회에 출석하는 후손들도 그 정신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였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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