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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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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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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교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실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 삼권분립이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하면 독재와 독선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는 역사가 증명해준다. 권력을 하나님의 섭리대로 쓰지 않으면 죄인된 인간의 손에서 결국 부패하게 되어있지 않은가. 전제국가, 독재정치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삼권분립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권력이 그나마 부패하지 않도록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하는 방안 중 하나이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종교권력, 문화권력 등 어느 영역도 분립의 원칙에서 벗어나면 병들게 되어있다.

중앙집권제, 중앙집중 구조는 그런 면에서 단점이 적지 않다. 강력한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까지 탈피하지 못한 중앙집권적 구조는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정권이 지방육성 차원에서 시도해 왔던 지방균형 정책이 실효를 못 거두고 있으니 얼마나 아쉬운가. 지방은 점점 피폐해지고, 대도시로, 수도권으로, 서울로 몰려오는 이 현상은 사회를 불균형, 상대적 박탈감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방”이 불이익과 낙인의 대명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렇다면 누가 “지방”에 살려고 할 것인가.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더 이상 지방을 홀대해서는 안되겠다.

인구감소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떤 지방은 시와 군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한다. 출생율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지방”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어서 속히 균형발전을 이루는 정책이 더욱 시급하다.

이 이론을 국제문제에 적용해보자. 최근 벌어진 일본의 수출규제만해도 중앙집중은 그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집중, 즉 경제의 중앙집중 구조는 대안 마련에 허둥지둥대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이 중견,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즉 기술과 연구 측면에서 상호 호혜 관계에서 발전해 왔다면, 일본의 일방적 결정에 당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국내 기술발전을 도외시하고, 외국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이런 수출규제가 위기로 돌변한 것이다. 대기업 중앙집중 구조가 오히려 허점을 드러냈다. 왜 진작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분권적 차원에서 기술을 공유하지 못했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단계로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계에도 중앙집중 구조는 가슴 아프다. 대형교회의 형성은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공룡급 대형교회로 형성되기 이전에 교회를 분립했어야 했다. 나라가 건강하려면 중간계층이 튼튼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소득 분배에서 오는 갈등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중간계층이 엷어지고 있으니 적잖이 염려되는 바이다. 대기업 하나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보다 중견, 중소기업들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구조이다. 교계도 다르지 않다. 대형교회는 권력집중이란 면에서 철저하게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죄인된 인간의 단체를 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인간의 거룩한 집회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 안의 권력 집중은 분명 변혁되어야 한다.

현대는 개인주의 시대이다. 개인이 정보의 플랫폼이 되고 정보를 생산하는 기업에 비유된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처럼 모든 권력은 이미 개인에게 주어져있다. 그런 시대 권력의 분권을 향한 시도가 멈춰서는 안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의 여러 영역에서 “지방분권”을 실행해 나간다면 상생 발전과 공유 복지를 실현하게 되리라 믿는다. 분권의 원리는 서로 나누어 주는 정신에서 온다.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히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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