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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운동에서 사랑실천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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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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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교수

 

최근 일련의 사태로 걱정된다. 대한민국 호(號),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면 심히 걱정된다. 문학과 문학사를 공부하던 나는 어떤 섭리에 이끌리듯 연구 주제를 “독일 나치즘과 기독교문학”으로 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치즘 치하에서 독일 교계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나치즘은 1933-45년 독일을 지배하면서 기독교계를 둘로 나누어지게 하는 분열의 악령이었다. 나치즘은 극우 파쇼정권으로 그 중심에 나치당과 히틀러가 있음은 익히 알려진 역사적 팩트이다.

이들은 “나라와 백성을 살린다. 그러기 위해서 위대한 게르만족 제국을 건설하자”라는 구호를 만들어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 훌륭해 보인 구호는 국민을 억압하려는 음모를 가진 이데올로기, 선전선동 프로파간다였을 뿐이다. 즉 권력을 장악해보자는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결과로 반역사적, 반인륜적인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다. 권력을 손에 쥐고 독일을 오히려 침몰시킨 것이다.

독일 교계는 나치즘의 현란한 구호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졌다. 찬성파들은 반대파를 매국노라 비판했고,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반대파는 나치즘 저항세력으로 복음을 사수했지만 순교를 각오해야 했다. 나치즘은 선하게 쓰여야할 권력을 악용하므로 폭력이 되게 했다. 사탄적 폭력에 세계가 시달려야 한 것이다.

이제 시선을 우리나라 현재로 돌이켜본다. 상황이 혼란스럽다. 정치(건강한 정쟁을 넘어선 국론 분열, 남남 갈등), 경제(청년 실업, 디플레이션 조짐), 사회(고령화, 세대 갈등), 외교(한미동맹의 약화), 국방(군체계 약화), 종교(종교계의 부패), 교육(과도한 학생 주권, 교사권위 실종) 등등 대한민국이 균형을 잃고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공의와 정의를 권력집행부가 스스로 견제하고 지켜야 한다.

현 상황을 염려하는 교계는 기도하자고 한다. 그러나 기도운동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지금까지 기도하지 않아서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웠던가. 새벽기도로 유명한 서울의 어느 교회는 세습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기도 많이 하기로 명성이 난 한국교회가 사회의 걱정거리가 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도합시다!는 구호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가 빠졌다.

골방에서 기도하고, 예배당에서 기도하고, 대형기도회에 모여 기도하고... 그 기도가 진정한 열매를 맺으려면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웃을 존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려는 마음이 아니면 기도는 중언부언이요, 결국 “너나 잘 해”라는 차가운 대꾸만 돌아온다. 이제는 기도운동이 사랑실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하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이 기도이며, 삶이 사랑일 때 한국교회와 성도는 나라와 백성을 살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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