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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사도신경 강해설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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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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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성령으로 잉태되심.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0-23)

 

예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심과 동정녀 탄생은 그래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기 위해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이야기도 아닙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이런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어떻게 성령으로 잉태 되셨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라는데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또 그 기사의 원래 목적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어떻게”에 대답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에 답변을 주기 위해서 기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에 관심을 두기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즉 과학적인 해답을 주지 않으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매도를 해버립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의 과학으로 아직 발견하지 못한 하나님의 질서의 법칙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법칙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질서의 법칙에 따라서 진실만 보도하고 있습니다.

 

1)성경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사람들이 만든 신화나 설화나 에피소드와 다른 점은 그것이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역사와 함께 기록을 하심으로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잉태되심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 일을 진행해 오시다가 드디어 때가 되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23절의 말씀도 이런 예수님의 출생이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7:14절 말씀에 메시야의 탄생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징조를 보여주실 것인데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2)성경은 인간의 생각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최대한도로 인간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도 인간들이 만들어 낸 탄생신화처럼 엉뚱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셨다든지 신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으로 짠하고 둔갑을 하였다든지 여러 가지 이야기로 꾸밀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장면만 제외하고는 우리 인간들이 하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셔서 일을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과 이해를 최대한 활용하시고 인간들이 쓰는 법칙을 최대한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몸을 빌리는 일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는 일까지 최대한 그대로 하시되 인간의 씨 대신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잉태시키는 일만 다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마저 인간들과 똑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면 그분이 특별하신 하나님이실 수가 없기 때문에 잉태만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하셨고 그 외에 모든 과정은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는 방법 그대로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2. 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나?

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을까 라는 질문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셨을까 하는 질문과 같은 질문일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동정녀의 몸에서 나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항상 “어떻게”라는 질문보다 “왜”라는 질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지 않고 바르게 알고 믿는 신앙을 위해서 “어떻게”라는 것을 설명을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하셨는가, 이 질문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1)인간이어야 하기에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즉 사람의 몸에서 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가 참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대표인 아담이 실수하여 이런 죄악 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완전히 순종할 또 다른 인간 대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2)죄가 없는 분이어야 하기에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와 똑 같이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면서 남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자신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아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지 우리의 죄와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 예수님은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3)우리의 구원의 확실성 말씀하기 위하여

모든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역사 즉 구속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구원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만큼은 최고의 것으로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말씀할 때 언제나 최선의 것을 가지고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신 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참 사람으로 오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죄가 없으신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쓰는 언어로 구원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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