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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사도신경 강해설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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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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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 19:38-42)

 

오늘은 “장사한 지 사흘 만에”라는 대목을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부분은 없어도 될 만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별 볼일이 없을 것 같은 짧은 신앙고백에도 깊은 의미들이 들어 있습니다. 꼭 필요한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역사 속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과 함께 꼭 이 장사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다 예수님의 장사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장사에 대해서 기록을 하면서 대강 적당히 어떤 사람이 장사를 지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시에 실존했던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고 자세히 그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 되신 것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본디오 빌라도라는 사람에 의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 되신 것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서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부자였고 공회 의원이었고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며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자신의 신분 때문에 그 사실을 감추고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공회에서 의결할 때 반대표를 던진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함께했다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 사람 역시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면서 율법사이면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당시의 법적이고 종교적인 일을 논의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었습니다. 유대 최고의 법원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이면서 대법원의 법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정성껏 세마포로 싸고 무덤에 안치시킨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사형을 당한 사람은 그 시체를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장사고 뭐고 없이 시체를 짐승의 밥이 되거나 그냥 없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시신이 수습되고 무덤에 장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3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당돌하게라는 말은 용감하게 대담하게라는 말입니다. 안 되는 일인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일인데 용감하게 담대하게 가서 시체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존경받는 공회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가서 달라고 하면 주지도 않고 오히려 불순분자라고 감옥에 잡아넣었을 것인데 그럴 수 없도록 권력도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가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어줄 수도 없고 해서 백부장을 불러서 정말로 확실하게 죽었는가를 확인한 후에 시체를 내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 되신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실존 인물을 통해서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하시고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서 진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되시고 부활하신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진행하신 일이며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예언을 하신 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무슨 일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하고 미리 준비되고 계획된 일 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이 일은 너무나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사전에 다 치밀하게 계획이 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일을 위해서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2. 장사 되심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또 부활하심이 사실인 것을 알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세력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 죽음을 부인하려고 애를 씁니다. 기절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시에 유명한 권력자였던 빌라도를 통해서 그리고 존경받는 공회원이었던 요셉이나 니고데모 같은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지냈다고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장사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서도 증명을 해주는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장사된 곳은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이 아마도 자기의 장례를 위해서 준비했던 아주 좋은 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장사 되신 무덤은 바위틈에 만든 튼튼한 무덤이었고 그 무덤 앞에는 아주 큰 돌로 입구를 막아 사람이나 짐승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무덤은 이제 사흘 후에 있을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한 이 장사 되심에서 받는 교훈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말씀으로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고난을 받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장사 되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신 것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도 결국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살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과한 후에 부활과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하고 결국은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장사를 지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은 이 죽음의 문이 심판의 문이고 형벌의 문이고 끔찍한 고통으로 인도하는 아주 흉악한 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온갖 몸부림을 다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가는 이 죽음이라는 문은 영광으로 가는 문이요 거기에는 상급과 영생의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는 너무나 좋은 문입니다. 죽음이 고통의 문이 되느냐 영광의 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여기에서 나누어집니다. 죽음의 문이 영광의 문이 되고 자랑스러운 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믿음의 중요성을 알고 어떻게 하든지 이 믿음에서 떠나지 말고 믿음을 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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