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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사도신경 강해설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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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양향모 목사

나는 성령을 믿으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6-20)

 

1.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6절 말씀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삼위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저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해를 하면 성부 하나님이 가장 높으시고 가장 먼저 계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나오게 하셨고 예수님이 그다음 성령님을 나오게 하셨다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서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싸우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정죄 되기도 하는 피가 나는 싸움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각각 다른 위격을 가지고 계시면서 또 동일한 능력과 동일한 권능과 동일한 성품을 가지고 계시는 마치 한 몸과도 같다고 해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이 각각으로 존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라고 하는 것은 성자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에서 아버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요한복음 14:26에는 보혜사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우리나라 말의 뜻은 보호하며 돕는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인데 부른다, 초청한다, 위로한다, 격려한다. 에서 온 말로 위안자, 보호자, 변호인, 대언자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변호하시고 대언 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이런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2.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진리를 알게 하시는 일입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진리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갈 수 있게 하는 진리가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진리가 되시는데 성령님께서 오시면 그 진리 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가르쳐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성경에서 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성경을 읽는데 어떤 사람은 그 성경에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이 그 마음에 계셔서 역사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조명을 해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은 모든 성경에서 성경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진리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은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엉뚱한 길로 가려고 합니다.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이 귀한 진리를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는 목적은 즉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알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0절 말씀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이 세상에 벼려두지 않으시려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내주 동거하심으로 성부 하나님이 그리고 성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혼자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시고 진리의 길로 가게 해주시고 복된 삶을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교회의 직분을 맡아서 일도 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뜨거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오히려 원망과 불평이 흘러나오고 사람들과 갈등만 생기고 미워하는 마음만 생기고 짜증스러운 일도 생깁니다. 교회에 오는 것도 그렇게 즐겁지도 않고 그냥 의무적으로 적당히 왔다가 얼른 가버립니다. 이러다가 때만 되면 핑곗거리만 생기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렇게 귀한 신앙생활이 자꾸 지겨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일까요? 왜 믿음이 시들시들해지는 것일까요? 왜 자꾸 형식적인 교인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왜 가식적으로 예배에 참석만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여러분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내어놓아야 하는데 여러분의 이기심이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 자신이 장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하고 뭐든지 내 뜻을 앞세우고 내 욕심이 나를 장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진리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내주 동거 해주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변호사이시며 보호자가 되시며 안내자가 되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해주심을 믿습니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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