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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신의 무덤” 아님을 증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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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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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교수(안양대) 추태화 교수(안양대)

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Nietzsche)를 일컫는 수식어가 다양하다. 생철학자(Life Philosophy), 문학적 철학가, 반기독교적 사상가 등등. 특히 그의 어록에는 기독교 비판이 두드러지는데 자신의 저서에 <적그리스도>(Antichrist)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로 냉혹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랑은 나약한 자의 자기변명이다” “유럽에 있는 기독교는 독약이다” “기독교는 노예의 도덕을 가르친다.” 이러한 기독교 비판을 시작으로 출발한 니체는 드디어 최악의 표현을 쏟아 붓는다. “유럽 문명이 몰락한다면 기독교 때문이다” “기독교는 유죄다” “신은 죽었다” “교회는 신의 무덤이다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심한 독설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섬뜩하다. 니체는 대대로 기독교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의 후예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루터교 목사였다. 니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기독교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의 별명은 작은 목사(Little Pastor)였다. 그런 니체가 어찌 자신의 집안이며 전통인 기독교에 대해 그토록 악의적인 사상을 퍼부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니체 평론가는 그 원인을 애증(愛憎) 이론에서 풀고 있다. 관심 있고 사랑하기에 반대로 더 실망하고 미워하게 되는 반대급부의 감정. 다시 말하자면 니체는 자기가 자라고 성장한 기독교 세계에 기대가 컸다. 모든 가치와 의미를 기독교에 두며 자랐다. 그런데 그가 실제 체험한 세계는 그렇지 못했다. 여기가 니체 사상의 변곡점이 된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교회는 신의 무덤이다.” 니체가 한 말 중 가장 뼈아픈 비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거꾸로 다가가면 어떻게 보이는지. 19세기 독일과 유럽 기독교는 니체의 눈에 모순적이었다. 껍데기와 형식은 화려하나 속은 그렇지 못했다.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사랑과 용서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교회당과 웅장한 예식으로 치장하고 교만을 자랑하는 회칠한 무덤처럼 보였다. 교인들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갔다. 교회와 교인들은 실제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니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만약 아직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다면 당신들이 믿는 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당신들이 섬기는 교회는 그 신의 무덤일 뿐이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세상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위기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염려와 공포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증인들이다. 믿음의 백성들은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증명해 내야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 하신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성령님이 친히 인도 하신다”...

우리는 믿는다. 교회는 신의 무덤이 아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듯, 믿음의 백성들이 그 제자도(Nachfolge, 본회퍼 목사, 나치시대 순교하심)를 실행한다면 세상은 복음의 빛 가운데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치유와 회복으로 돌아오리라. 코로나바이러스는 거꾸로 교회는 신의 무덤이 아니다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리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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