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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경영 | 일본 기독교의 전설, 가가와 도요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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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섭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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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을 많이 갖고 있다. 흔히 교회당의 크기와 출석 성도 수로 교회의 크기를 가름하곤 한다. 찰스 콜슨(Charlson. Colson)은 그의 책 ‘이것이 교회다’에서 교회의 의미를 시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국민의 20%대가 기독교 신도라 평가되고 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 탁월한 인물이 많으나 세계사적으로 강한 미치는 지도자는 드물다. 큰 교회는 많으나 큰 영적,사상적 영향력을 미치는 기독교 사상가나 실천가는 적다. 우리에게도 손양원,김교신,이세종,이현필,이용도,유영모,함석헌 등 걸출한 사상과 실천이 없지 않으나 우리사회에서 그 영향력은 아직 적다 할 것이다. 일본은 낮은 기독교 신도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영성가와 실천가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이다. 그는 목사이면서도 저술가로 근대 일본의 기독교에 확연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사회적 약자의 생활 향상을 위한 구제활동과 관동 대지진(1923)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개척함으로써 일본에서 여러 가지 운동의 창시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사회운동, 노동조합, 농민조합, 협동조합, 평화운동 등 운동이라고 이름 지어진 모든 것에 깊이 관여하여 기독교의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고베 시에서 당시 천대받던 첩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도쿠시마는 상류집안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 본처의 집에서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기생의 아들’이라는 조롱과 심한 구박을 받으며 생활했고, 폐결핵까지 앓게 되었다. 그는 살고 싶지 않아 몇 번 죽으려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참곤 했다. 소년기에 선교사들의 전도로 성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하느님을 온 인류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다는 기독교 교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가가와 소년에게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졸업 후 도쿄 대학교 진학을 원하는 숙부 모리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 장로교 선교부에서 세운 메이지 학원 신학부 예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학교 2학년 때 결핵에 감염되어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자, 깊은 산골에 들어갔는데 이때 가네자와 교회의 나가오 목사의 보살핌을 받았다.

당시 나가오 목사는 무려 5년이나 유일한 신도인 사모와 자녀 앞에서 설교할 정도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지만, 가가와에게는 그의 진로를 바꾼 스승이었다. 핏덩어리를 토하면 걸레를 가져와서 닦아주고, 같이 밥도 먹는 나가오 목사의 자비로운 성품을 보면서 빈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 것이다. 건강이 좋아지자 가가와는 미국 남장로교회에서 세운 복음주의 신학교인 고베 중앙신학교에 입학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다. 가가와는 남은 여생을 고베빈민촌의 빈민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하여 1960년 별세할 때까지 헌신적으로 빈민촌에서의 전도와 사회참여를 했는데, 당시 그의 설교를 들은 기녀들이 기녀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흔히 가가와의 경력사항은 빈민들을 위해 봉사한 사회복지활동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 농민운동, 프롤레타리아 정당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일본농민조합창설 등의 활발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20년대에 일본의 전쟁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었던 사람이다. 또한 1940년에는 개인 자격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을 중국에 사죄하였다가 또다시 일본 정부로부터 모진 탄압과 고초를 겪었던 사람이다. 그도 모자라 우리나라의 자유당 정권시절,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와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죄를 자청하였던 사람이다. 또한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 정부의 무서운 탄압 속에서도 인권 운동을 가열 차게 전개하며, 여성 운동에도 최 일선에서 앞장섰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일생 빈민들을 위해 헌신했고 노동운동과 민권운동 그리고 반전평화운동에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되었을 때 ‘사선을 넘어’‘태양을 쏘며’ 등 베스트셀러를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그의 삶은 일본을 넘어 중국과 한국의 상처 난 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엄청난 저술을 했는데, 그가 저술했거나 번역한 서적은 자그마치 15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늘 자신의 스승 나가오 목사를 기억했다. 사실 나가오 목사는 평생토록 단 한 사람의 교인 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전한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가가와 도요히코, 20세기 일본의 성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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