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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경영 | 한국의 상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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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섭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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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entrepreneur)이 투철한 민족으로 한민족을 들었다. 유태인이나 중국인, 화란인,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을 든 것이다. 여러 자료에서 보면 우리나라만큼 자영업의 숫자와 비중이 큰 나라도 드물다. 물론 이는 근래의 경제적 여건과 변화에 기인한 바가 없지 않다. 한국인은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도전정신이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경제기적의 주요 요인으로 도전정신과 상인정신을 든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고 외국인이 말했으나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자동차생산대국이 되었다. 반도체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국 100대 기업 창업주는 대부분 상인 출신이다. 중국인과 유대인 상술 못지않게 조선 후기 개성상인, 경성상인, 동래상인, 의주상인, 평양상인에서 시작된 300년 상혼은 한국을 도약시킨 밑거름이 됐다. 한ㆍ일 양국 경영사학자 100명 중 85%가 `시간은 걸리겠지만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은 것은 한국인, 특히 한국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상인 열전`(이수광 지음)에 따르면 조선 개성 거상 임상옥은 인삼독점권을 얻어 중국과 무역하는 `인삼왕`이 됐다. 무역왕 최봉준은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포화 속을 누비면서 러시아 군대에 소를 납품했다. TV 드라마로도 전파를 타고 있는 제주 여성 상인 김만덕은 육지 병영상인과 섬을 잇는 객주(도매상)로 발을 내디뎌 조선 최고 거상이 됐다. 보부상 백달원은 `고객들에게 폭리를 취하지 않고 해코지를 하지 않는` 500년 보부상 철칙으로 조선 상권을 장악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은 대구시 서문시장 근처에 청과물과 건어물, 잡화를 취급하는 `삼성상회`를 설립해 삼성생명 등 서비스업은 물론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삼성자동차 등 제조업으로 균형을 이룬 오늘날 삼성그룹을 일궈냈다. 창업 후 1950년대부터 1~2년에 한 개씩 새로운 기업을 세웠다. 1970년대에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반도체 창업을 총지휘했다.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 즉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이라는 생각 아래 끊임없이 사업을 일으켰다.

한국 경제 개척자 정주영 회장은 쌀가게 `복흥상회`를 시작으로 현대그룹을 일으키는 기적을 창조했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의 상징이다. "이봐! 해봤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쌀가게를 하며 번 돈과 차입금으로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서비스`를 인수하는 M&A를 처음으로 단행한다. 아도서비스는 오늘날 현대자동차를 잉태한 배경이 됐다.

우리나라의 상인을 지역적으로 나누기도 한다. 의주를 중심으로 한 만상과 개성을 중심으로 한 송상이 조선후기에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북에는 개성상인이 있고 남에는 병영상인이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지역적 특성을 보이며 상인은 발전해 왔다. 조선시대 한양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개성상인이, 남쪽에서는 병영상인이 상권을 장악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북을 휘어잡고 있던 개성상인(송상)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지속돼 왔지만 남쪽 병영상인은 상대적으로 베일에 가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병영상인 역사는 태종 17년 전남 병영이 설치됐을 때부터 현재까지 600여 년간 지속되고 있다. 쇄국주의 정책이 풀리지 않았던 15세기 전후 일본 상인들이 거주하며 수출입을 하는 왜관이 존재했다. 이들 상업활동은 1657년부터 6년간 병영에서 억류생활을 했던 하멜이 남긴 `하멜표류기`에도 언급돼 있다. 우리나라에 보부상을 중심으로 한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때를 일반적으로 170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는 정황을 볼 때 병영에는 상업적 토대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형성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영상인 활동 기록이 역사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대상(大商)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주로 소규모 생활용품을 다뤘기 때문에 이름을 알린 상인들이 드물다는 설명이다. 대상은 없었지만 병영상인 중에는 실패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들이 전국 시장을 제패한 비결은 자금력도, 권력과 유착도 아니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차곡차곡 쌓아나간 서비스 정신이 이들의 무기였다. 성냥 등 작은 것부터 팔며 장사를 배워나갔기 때문에 물건을 취급하는 법, 손님을 상대하는 법 등은 다른 상인들이 따라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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