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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일하는 크리스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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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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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를 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친히 십자가 형벌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고난주간이 왔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들고 줄리아 로버츠가 열연한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일터 속에서 고난을 겪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이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여인은 아버지가 각각 다른 세 아이들을 데리고 산다. 돈은 없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써보지만 녹록한 일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황당하게 자동차 사고마저 당해 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그런데 변호사 에드는 그만 패소하고 말았다.

에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드의 법률사무실을 찾아가 무턱대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일을 시켜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변호사 에드도 어쩔 수 없도록 에린은 억지로 그 회사의 직원으로 눌러 앉았다. 여기서 에린이 의미 있는 말을 한다. “일단 일을 시켜 보고 맘에 안 들면 그 때 가서 해고하세요.”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협박’이기도 하고 그만큼 절박한 자기 심정을 잘 표현한 것이다.

일종의 알바를 하는 것인데, 에린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말 잘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린은 한 대기업의 공장에서 유출되는 중금속이 마을 사람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직접 찾아가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조사를 추진하면서 에린은 변호사 에드를 설득해 소송을 제기했다. 에드는 거액의 소송비용을 대기 위해 LA의 거대 법률회사와 손을 잡고 재판 대신 합의를 시도한다. 그 때에도 에린은 당당히 자기주장을 한다. 그 상황에서 에린은 한계를 느끼게 되고 너무나 힘든 직장의 현실을 경험한다.

결국 회사 측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증명할 중요한 증거들을 수집한 에린은 소송을 제기하고 당당하게 보상을 받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634명 전 주민의 동의를 얻어내고 마침내 미국 역사상 최고의 손해배상액인 3억 2천만 불을 받아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잡무를 처리하는 직원이 아닌 당당한 변호사의 역할을 에린이 감당했다. 200만 불의 보너스를 받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미해결된 사건들을 의뢰받는 변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옳고 그른 것이 뭔지는 알아요.”

대기업을 상대한 소송에서 이기기는 힘드니까 재판 대신 합의를 하자고 하는 직장상사 에드에게 에린이 했던 말이다. 법에 대한 전문가가 법적으로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을 알았다. 부정한 비즈니스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해야 실익을 챙길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린은 정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정의에 대한 열정이 그를 멋진 직업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불의를 보고 그대로 묵인할 수 없는 정의감이 결국 세상의 부정한 문화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에린은 전에 미스 미치타 주 대표로 뽑혔을 때 수상 소감을 말했던 것을 회상한다. 자신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기회를 가지겠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미인대회 수상자들이 늘 하는 상투적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에린은 어렵사리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자신의 일이 바로 이전에 말했던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열정이 필요하다.

오늘 크리스천들이 일하는 일터에도 정체성을 위협하는 어려움이 있고 협잡과 부정이 난무할 수도 있다. 정치계, 경제계, 의료계, 교육계 등 골고루 비리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일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 우리의 일터가 바로 우리의 사역의 현장이라는 그 귀한 직업관을 가지고 제사장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벧전 2:9)이라는 귀한 사명을 잊지 않고 고난을 견디어 내어야 한다. 주님의 고난을 우리의 일터에서 실천하여 결국 부활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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