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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일, 가족, 그리고 또 하나 남길 것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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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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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일까?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겠으나 누구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 교수가 되고 싶었으나 대학에는 2개월밖에 다니지 못했고 45년간 자동차 정비를 하며 살아온 카터는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그 병원의 오너인 에드워드는 법정공방을 벌이다가 각혈을 하고 입원했다. 그도 6개월, 길면 1년의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다. 둘은 한 병실에서 지내지만 피부색과 살아온 삶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아 갈등을 계속 겪는다. 에드워드는 시한부 판정을 알리는 의사에게 “티비 화면 가리지 말게.”라면서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 통 큰 소원을 말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흉내를 내지만 초조하고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중한 병세를 가지고 있는 카터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보인다.

대학 신입생 때 철학교수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숙제를 적어보고 그것을 실천해 보라고 했던 것, 그것을 장난처럼 작성하면서 둘은 의기투합한다.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 나도록 웃기, 정신병자 안 되기, 장엄한 장면 직접 보기”등의 카터 목록에 “스카이다이빙, 카레이싱, 문신 해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등을 합한 에드워드 목록이 합해져 버킷 리스트를 실천해낼 일이 남았다.

카터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와 함께 떠나 세계를 돌아다닌다.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의 만리장성 등등. 그 낭만적인 곳들을 다니며 둘은 인생의 의미와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에드워드는 열여섯 살부터 유일하게 성공한 결혼은 일이라면서 가정은 포기해버리고 일만 해온 사람인데 어쩌면 그의 삶은 Money를 위해 살아온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벌며 살아온 카터가 피라미드 위에서 에드워드에게 질문을 한다. “이집트인들은 ‘당신의 인생의 기쁨을 찾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여부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고 믿었는데 과연 자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쁨을 얻었는가?”“그 사람들한테 물어봐”. 에드워드는 카터가 질문하는 인생의 Meaning에 자신이 없다. 인생의 기쁨을 말할 때 끝내 멀어진 딸과의 관계가 걸린다.

결국 몸에 무리가 오게 한 여행을 서둘러 마치면서 카터는 에드워드가 딸과 손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다. 그러나 화가 난 에드워드는 끝내 거부한다. 카터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돌아가고 가족들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며 분주한 식사를 한다. 아름다운 식탁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멋진 모습이다.

왜 회한이 없을까? 카터는 뇌에까지 암이 전이되어 급히 수술을 받고 결국 세상을 먼저 떠난다. 마지막에 에드워드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커피루엑이 원숭이가 배설한 원두를 갈아 만든 ‘고양이똥’이었다면서 눈물 나게 함께 웃으면서, 카터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결국 장례식에서 인사하면서 그는 카터와 세상을 여행하면서 인생을 알게 되었으니 카터는 2개월 전에 전혀 모르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카터로 인해 에드워드의 삶이 보람과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남긴 편지에 “우리의 삶이란 깊은 강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이지요. 폭포 너머 안개 속에 있는 가정이라는 천국으로 향하게 하지요. 강물이 그렇게 천국으로 향하도록 그 흐름에 당신을 맡기세요.”라는 말을 따라 에드워드는 딸을 찾아가고 거기서 화해하고 손녀와 키스한다.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를 해냈다. 결국 에드워드도 가족의 가치와 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하긴 사람들이 이렇게 죽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만들기만 하면 이렇게 그들처럼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호사’를 즐길 수(?) 있겠는가? 돈 많은 재벌이니 가능했다고 삐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만 끝나고 만 것에 아쉬움이 있다.

영화에서 북극을 지나며 별을 바라보고 믿음에 대해서 말문을 연 카터는 믿음에 저항한다는 에드워드가 이런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다. “자넨 전도 같은 건 안 하나?”
그러자 카터는 말한다. “난, 그냥 믿는 거야.”
“할렐루야, 형제님. 헌금이나 하세요.” 그렇게 그 대화는 끝나고 만다. 생애의 마지막에 남길 것, 안타까움을 담아서 할 말이 없었을까?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넘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생각해야 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틀림없이 있어야 한다. 삶 그 자체가 사명이나 아울러 복음을 전할 기회에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주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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