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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분단을 극복하는 사랑 - 영화 <흑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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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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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문제를 다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멋진 작품이 있는데 이 영화 <흑수선> 또한 멋진 영화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보내는 때에 생각해봄직하다. 꽤 오래 전에 나온 영화이지만 남북관계의 경색 상황을 생각할 때 깊이 묵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준다. 작가주의 감독인 배창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는 현재 시점에 한강에서 살해되어 떠오른 한 노인의 시신에서 출발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그 시신은 양달수라는 사람이었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했던 포로들을 검거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때 탈출했던 한동주라는 사람은 지리산 빨치산 출신으로 포로수용소를 탈출했다. 알고 보니 양달수와 거래를 통해 총살된 것으로 처리되고 일본으로 밀항해서 사업가가 되어있었다. 그 과거의 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 두 사람 더 있는데, 한 사람은 남로당 간부의 딸이었던 손지혜이고 그 집의 머슴이었던 황 석이다. 황 석은 미전향 장기수로 49년 동안 복역한 후에 출소한다.

이런 과거사를 차근차근 파헤치는 사람이 바로 현실 세계의 오형사이다. 양달수가 칼에 찔려죽은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양달수의 집에 있던 사진 두 장과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일본제 금테 안경을 추적하고, 또 빛바랜 명함 한 장을 단서로 결국 일본 사업가 마에다 신따로가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한동주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물론 그 중간 과정에서 영화는 반전을 거듭한다. 양달수하고 함께 포로 검거하는 일을 했던 지서 주임이었던 노인이 킬러에게 살해당하고 오형사는 한동주를 체포하려고 하지만 한동주가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 자결해버린다. 그러자 황 석이 범인인 줄 아는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내용은 두 사람을 죽인 범인이 손지혜라는 사실이다. 시각장애인 행세를 한 것이 밝혀지고 결국 그 여인은 경찰에서 자기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 황 석을 구하려고 하다가 경찰의 오인 사살로 죽고 만다.

이렇게 이 영화는 미스테리 형사물에 전쟁 액션을 가미한 장르의 영화인데, 가만히 생각하면 참 슬프다. 분단 주제를 다룬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가 결국 사람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가? 이 영화도 분단의 아픔을 안고 애틋하게 죽는 죽음이 있다. 이런 죽음 자체가 우리의 분단 현실, 이념의 갈등을 설명하는 중요한 ‘영화 언어’이다. 죽음만큼 슬픈 일이 있는가?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고 과실로 죽는다.

이런 죽음이 왜 슬픈가, 그 이유를 찾으면 두 가지이다. 황 석과 손지혜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참 애틋한 사랑이다. 과거에 탈출한 포로들이 군경에 쫓길 때 황 석은 손지혜를 살리기 위해서 한동주와 손지혜를 남겨두고 혼자 군경들을 유인했다. 그래서 결국 체포되었다. 그런데 한동주는 양달수에게 자수해서 손지혜가 숨은 곳을 알려주고 일종의 거래를 했다. 그 거래를 통해서 한동주는 일본으로 밀항하고 손지혜는 양달수의 아내가 된다.

여기에 더해서 이 나쁜 사람들 양쪽을 속인다. 양달수가 황 석에게는 입을 열면 손지혜가 죽으니 입을 다물라고 하고 손지혜에게는 황 석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의 아내가 되어야 하고 모든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해서 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양쪽으로 속였던 것이다. 이것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손지혜가 알고는 그 못된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 <흑수선>에서 분단이 비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들이 옳다고 판단했던 이념을 추종하던 사람들(물론 상반된 이념이었다), 그들이 한 결 같이 그 이념이 추구하는 자유나 평등과 같은 본질과 관계없이 탐욕과 술수와 거짓, 위선과 같은 모략으로 이후 50여년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비극이다. 이 영화가 지적하는 문제는 이렇게 인간성의 본질이다.

그런 사람들의 추악한 인간성이 황 석과 손지혜가 50여 년 동안 간직한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과 대비되는 것이다. 손지혜는 사랑하는 남자 황 석을 살리기 위해서 평생 모욕과 아픔을 참아내었다. 황 석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50년 가까운 기간 묵묵히 감옥 생활을 감당해 내었다.

마지막 장면에 서울역 청사 위에서 총에 맞아 떨어져 죽은 손지혜를 구급차에 옮기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만지지 말라고 소리를 치는 노인 황 석의 목소리에서는 전율이 느껴진다. 분단의 아픔, 추악한 사람들의 탐욕과 대비되는 고결하고 단호한 사랑이 저렇게 표현되는구나! 자기 때문에 죽은 여인을 안고 떠나는 노인의 기억 속에 어릴 적에 황 석이 손지혜를 업고 건너던 장면이 회상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감상적으로 남북 관계를 접근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이 먼저 뜨겁지 않고 머리로 이룰 수 있는 통일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머리는 냉철해도 우리 가슴은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통해 분단과 남북 대치의 현실을 극복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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