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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환호와 인정만이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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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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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로 아카데미영화상들을 휩쓸었던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 영화라기보다는 ‘일과 가족’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다. 이제는 한물간 복싱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오랜 친구이자 체육관의 총무 격인 동료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함께 지낸다. 둘은 오래 전부터 선수와 치료를 담당하는 세컨드로 지내면서 우정을 쌓아왔으나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프랭키는 오래 전부터 딸과 사이가 좋지 않은데 편지를 보내도 늘 반송 도장이 찍혀 돌아온다. 이들에게 식당의 여급인 매기(힐러리 스웽크)가 찾아온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지만 가난하고 무절제하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니 매기는 가정환경이 불우하다. 그러나 자기는 권투를 좋아한다면서 체육관을 찾아왔다.

그런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보인다. 복싱을 시작하기에는 할머니 격인 나이인 서른한 살의 매기, 40여 년 전에 현역이었던 두 사람 프랭키와 스크랩은 이제 곧 죽을 것 같아 보일 정도로 늙었다. 이런 애처로운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부족을 보고 연민을 느꼈는지 서서히 교감하기 시작한다.
복싱을 배운 매기가 1회전 케이오승으로 승승장구했고 그들의 상처는 서서히 싸매어져 간다.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함으로 그것이 가능해지는 듯하다. 스승 프랭키가 오랫동안 딸과 만나지 않는 것을 안 매기가 대뜸 프랭키에게 딸의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가 묻는다. 겸연쩍은 듯 웃는 매기는 자기 집에서는 몸무게로 말한다고 얼버무린다. 매기의 엄마는 100킬로그램이 넘는다. 그런데 이렇게 매기가 몸무게에 민감한 이유가 있다. 나중에 고백하는데, 매기는 태어날 때 3파운드(1,400그램)도 안 나간 미숙아였다!

가난한 살림에 정부 보조로 생활하는 엄마는 매기가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권투에 대해 관심도 없다.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알면 웃을 것이라면서 매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뭇매를 맞고 번 돈으로 집을 사주어도 정부 보조금을 못 받는다면서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한다. 끝까지 가족들은 매기에게는 관심 없이 돈만을 밝힌다.
이런 엄마와 달리 “항상 스스로를 보호하라”면서 권투를 가르치는 프랭키는 매기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매기는 프랭키에게서 어릴 적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는 아버지를 느낀다. 딸에게 버림받은 프랭키 역시 매기에게 점점 아버지의 감정을 느낀다.
평소 타이틀전을 자주 열어주지 않아 떠나는 제자들도 많았던 프랭키가 매기에게 WBA 웰터급 타이틀전을 주선한다. 상대는 난폭하기로 유명한 챔피언인데 그만 그 시합에서 공이 울린 후 등을 보이고 손을 내리고 세컨드로 돌아오던 매기는 뒤에서 일격을 받고 의자에 부딪혀 크게 부상한다. 호흡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평생 누워 지내야 할 중상이었다. 이제 권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존을 해나갈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링 위에서 의자를 조금만 빨리 뺐더라면 그런 심한 부상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프랭키는 평생 계속되는 중압감에 찌들어 살아왔다. 구체적 이유는 밝히지 않지만 딸을 향한 죄책감, 전에 스크랩이 109번째인 마지막 경기를 할 때 경기를 제 때에 포기하지 않아 한쪽 눈을 실명하게 만들었던 죄책감, 아마도 이 세 가지 모두는 다 일과 관련된 것일 듯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권투, 그 일 때문에 생긴 상처와 아픔이고 조금 더 상상하자면 그것은 바로 ‘일중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프랭키의 생각은 그대로 매기에게 전수되고 매기는 다 배웠다. 도저히 회복의 가망이 없고 다리마저 절단해야 하게 되었을 때 매기는 말한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었어요. 그것을 경험했어요.” 이제 그것을 잃은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환호, 사람들의 인정, 그 속에서만 인생의 가치를 찾으려는 것, 바로 성공에 대한 욕구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늘도 관중들 앞에서 피를 튀기며 터지고 찢어져가면서 스포츠라는 미명으로 여전히 권투를 하는 것인가? 프랭키는 빠르게 성공하는 위험성에 대해서 가르친다고 하면서 권투를 통해 인생의 철학을 가르친 듯하지만 잘못된 전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매기는 아버지가 어릴 적에 장애가 있는 개를 산에 생매장해버린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달라고 프랭키에게 요구한다. 그럴 수 없었던 프랭키는 혀를 깨물어 거의 죽을 지경이 된 고집불통 매기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한다. 자유롭게 놓아준다면서 모쿠슈라(내 사랑, 내 핏줄)의 뜻을 알려주고 안락사 시킨다. 그리고 아마도 프랭키 자신도 매기의 길로 간 듯하다.

과연 옳은 방법이었고, 이것이 구원의 길일까? 끝내 가족들에게는 배신당하고 일로 맺어진 ‘부녀관계’ 같은 두 사람이 택한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그들의 성공에 대한 전제가 잘못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일과 가족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을 몰랐고 끝내 그 균형과 조화를 복원하지 못한 불행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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