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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계절의 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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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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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푸르러 무성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낮게 엎드린 늦가을의 풀잎을 황금물결로 노래한 가객도 있다. 풀잎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청초하고 맑음의 상징이기도 하며, 힘없는 민초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풀잎”(Leaves of Grass)은 1855년 출간된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대표 시집이기도 하다. 그는 평생을 이 시집을 쓰는데 보냈으며, 시집에 있는 시들 중에는 “내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 “나는 몸의 전율을 노래하네”(I Sing the Body Electric)와 증보판에는 A.링컨을 그린 애가 “앞 뜰 라일락이 피어 있을 때”(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등이 실려 있다.

우리의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풀“에서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 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라 노래한다. 약해 보이는 민초들의 삶이 더 강한 힘인 바람보다 먼저 누우나 늘 먼저 일어나는 힘을 노래하고 있다.
“들풀 향기로 눈물이 날 때”(민미경)에서 시인은
‘... 무엇이 그리 급해서/서둘러 /그렇게 너는 구름이 되고 /물이 되었을까//들풀향기로 눈물이 날 때/왜 너는 /내가 가슴 아파 한다는 것을 잊었을까/왜 너는 지금 흩어져 너 울지는/맑은 은빛햇살로 /내 가슴에 내려 앉아 너도 울고 있는가....’라고 노래한다.

풀잎은 많은 경우 가난하고 쓸쓸한 그러나 맑고 깨끗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들풀의 이름은 오히려 생소하기도 하다. 쇠비름이나 괭이밥처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도 있지만 쑥, 개망초, 냉이, 쇠뜨기, 질경이, 털별꽃아재비, 방가지똥, 선개불알풀 같이 대다수는 낯설기만 하다. 며느리밑씻개, 스타펠리아, 참외꽃, 달개비, 제비꽃, 강아지풀, 요로법, 녹두,주름잎, 방가지똥, 여뀌, 닭의 덩굴, 딱지꽃, 까마중, 매듭풀, 수까치깨, 돌콩, 왕고들빼기, 괭이밥, 중대가리풀, 명아주, 박주가리 덩굴, 초피나무, 함박꽃, 수크령 등 처음 들어보는 듯한 이름들인데 사실은 이것들이 다 우리 집이나 도로변에서 흔히 보는 그 풀들이다.

들풀과 들꽃은 인간의 삶처럼 다양하고 제각기 이름과 꽃과 사연을 갖고 있다. 들풀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훼손된 자연을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처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들풀이다. 불타버린 산이나 버려진 밭이나 폐허가 된 곳에 맨 먼저 파란 생명과 우주를 시작하는 것은 늘 풀이다. 한 해살이 풀이 시작하고 여러 해살이 풀이 이어 자라고 땅은 생명력을 회복하고 더 큰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한다. 들꽃과 숲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한 시인은 절망의 극한에서 감옥 담벼락 사이에 피어난 파란 생명력인 풀을 보며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살 근거와 힘을 얻었다고 한다.

풀의 세계에는 각기 처한 상황과 조건에서 생존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과 몸부림이 있다. 풀은 늘 성공적으로 다시 살아나며 아름다운 빛깔로 새로운 하늘을 연다. 풀들은 자신의 길을 혼자만 가지는 않으며 남을 우습게보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처한 환경에서 자기 보존과 성장을 위해 열심히 햇빛과 비와 이슬과 바람을 맞으며 성장하고, 잎을 키우고 꽃도 피우며 마침내 씨를 맺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듬해 파란 옷을 입고 더 무성한 모습으로 다시 피어나고 꽃피운다.

이런 풀잎의 놀라운 생명력은 어떤 보복이 아니라 자연 특유의 치유의 힘이다. 망가진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데,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처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들풀이다. 풀잎은 계절의 전령사다. 계절과 기온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계절의 변화를 알려 준다. 도처에 피어난 소박하고 아름다운 들꽃들을 바라보면 사람은 평온해지고 동시에 낮게 처한 들꽃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들풀과 들꽃을 바라보며 계절을 느끼고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삶의 여유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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