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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봄을 더욱 아름답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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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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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거칠기도 하게 진지한 탐구를 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몇 편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세계적 감독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특이한 작품 중 하나가 이 영화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목조 암자와 4계절의 운치 있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운 영화이다. 한국의 멋과 전통적인 불교 사상도 담아낸 작품이다.

봄의 세계는 어떤가? 호수 속의 암자는 배를 통해서만 세상과 열려 있다. ‘선착장’ 입구에 절의 문이 있다. 그 넓은 호수가 다 암자인 셈이다. 동자승과 노승이 사는 절에서 동자승은 약초 캐러 산에 갔다가 물고기, 개구리, 뱀의 몸에 실을 묶어 돌을 매다는 장난을 친다. 키득거리면서 장난치는 모습을 다 지켜 본 노승은 잠든 동자승의 허리에 큰 돌을 묶어두었고 찾아가서 모두 풀어주라고 했다. 하나라도 죽었으면 평생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개구리를 살아 풀어주었는데 물고기도 죽었고 뱀도 죽었다. 서럽게 운다. 봄은 어릴 적에도 잔인함을 담고 있는 악한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여름의 세계다. 동자승이 자랐고 몸이 아픈 한 여자아이가 암자에 들어온다. “마음의 병인 것 같은데 마음이 편안해지면 몸도 편안해지겠지요”라고 진단하는 노스님의 눈을 피해 소년이 된 동자승은 성적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아름다운 하늘 아래 바위 위에서 둘은 몸을 합한다. 그리고는 대웅전 안의 침실(벽은 없고 문만 있는 곳)에서 문이 아닌 벽을 통해 나와 소녀의 이불 속으로 기어든다. 동자승의 여름은 욕망의 계절이다. 그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소년은 소녀를 따라 떠난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한다”고 가르쳤건만 절구 물 위에 떠 있는 부처상을 가지고 속세로 떠난다.

가을의 세계는? “30대 남자 아내 살해 후 도주”라는 짧은 기사를 보던 스님에게 동자승이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청년인 그는 아내를 살해 후 도주한 것이다.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냐? 재밌는 얘기나 들어보자”는 스님에게 “사랑을 한 죄밖에 없어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참을 수 없었어요. 나를 사랑한다 해놓고... ” “속세가 그런 줄 몰랐더냐?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있느니라. 내가 좋은 것 남도 좋을 수 있다는 것 왜 몰라? 그렇게 참을 수 없더냐?”

분노를 참을 길 없어 폐(閉)자를 쓴 창호지를 눈과 입에 붙이고 자살하려는 청년에게 스님은 매질을 하고 고양이 꼬리에 먹물을 붙여 <반야심경>을 암자의 나무 마당에 쓴다. 그것을 다 칼로 파라고 명하는 스님. “남을 쉽게 죽인다고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다. 한자씩 파며 분노를 마음에서 지우거라.” 형사들이 나타나도 스님은 새벽까지 계속 파고 가게 해달라고 하여 밤새 반야심경 부조를 만드는 불사(佛事)가 계속되었다. 심심하던 형사들도 촛ˆ한자들어주면서 형사와 범인이 하나가 된다. 쓰러져 잠든 청년 대신 색칠을 하는 일도 형사들의 몫이었다. “그만 일어나거라. 이제 떠나야지.” 손을 흔들고 떠나보낸 스님은 스스로 배와 함께 산화하여 화장을 했다. 암자의 가을은 욕망과 분노, 그것을 잠재우는 수행의 계절이다.
겨울의 세계는? 얼어붙은 연못을 걸어오는 중년의 남자(이 역할을 김기덕 감독이 직접 했다)는 스님의 사리를 건져 얼음조각을 만들어 장례를 지내고 서랍 속 책을 보고 무예를 스스로 익힌다. 얼굴을 완전히 가린 한 여인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울다가 돌아가면서 세수 구멍에 빠져 죽었고 그 여인의 얼굴이 궁금했던 장년은 끝내 부처의 얼굴을 그 여인에게서 본다. 과거 고기와 개구리와 뱀에게 돌을 묶었던 그 업보를 해결하기 위해 맷돌을 몸에 묶고 산꼭대기로 오른다. 고행의 길을 간다. 영화 <미션>의 그 주인공처럼 말이다.

다시 봄이 왔다. 아이가 다시 커가고 여전히 그 암자에는 노승과 동자승이 있다. 그 동자승은 고기를 잡아 입에 돌을 넣고 개구리를 잡아 입에 돌을 넣고 뱀을 잡아 그렇게 입에 큰 돌을 넣는다. “하하하 흐흐흐 하하하….” 웃어가면서 그렇게 또 봄이 온 것이다. 돌아온 봄은 다시 그렇게 또 흘러가는 인생이다. 달라진 점은 이번의 노승은 아이의 초상화를 그려준다는 것, 예전 스님처럼 기왓장에 붓글씨 연습을 하지 못한 콩밥 먹은 스님이라 아마도 감옥에서 그림을 배웠던가 보다. 그렇게 다시 봄이 되었다. 잔인한 인간 본성은 계속되고 그 업보를 평생 마음에 지고 사는 인생은 그렇게 쳇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참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렇게 해서 세상은 아름다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악한 본성을 치유하는 일은 그렇게 맷돌 끌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불상을 세우는 것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어릴 적에 새를 돌로 죽이게 된 경험에 충격을 받고 결국은 생명을 귀하게 여겨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위해 평생 의술을 베풀었던 슈바이처와 같이 말이다.
그래서 찬란한 봄, 1년 전과는 다른 의미있는 봄이 오게 해야 한다. 1년을 반복하여 10년 100년을 산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던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밤새 반야심경 칼로 파는 고행보다는 뭔가 자기가 잘못한 그 사람과 관계된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아름다운 영화인데 이런 사상은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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