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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직장인 다니엘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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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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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임당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로마제국 내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사람들만 당하는 형벌인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과 수치 가운데서 예수님은 죽임 당하셨다. 세상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주님의 고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직장생활을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해서 살펴보자.

우선 그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그들은 조국이 망한 후 바벨론 제국에 볼모로 잡혀갔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겪기 힘든 매우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했다. 우선 하나님의 이름(엘, 야)이 반영된 이름들을 바벨론 신의 이름(벨, 아쿠, 느고)이 들어간 이름으로 바꾸어야 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 지닌 의미와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한 바벨론의 종교적 제의를 습득하고 그대로 행하는 바벨론의 학문을 배워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다 감당했다. 사실상 이것은 그들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의무로 부과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이 하사하는 특별한 음식은 거부했다. 이것은 권리의 포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의무는 다하면서 권리는 포기하는 태도가 바로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정체성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격리되어 살 수 없다. 함께 하되 구별되어야 한다. 하지만 함께 한다고 하여 세상에 동화되면 안 된다. 적응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분명한 정체성의 원칙을 가져야 우리가 일터에서 고난을 극복해낼 수 있다.

둘째로 다니엘은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고난을 겪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훌륭한 성적으로 3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정부 관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는 그 해몽을 해내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꿈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폭군으로 불리는 것인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언가 장래 일에 대한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신하들에게 꿈을 말하면 해몽 전문가들이 해몽을 적당히 할 테고 그 진위여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니 왕은 해몽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강짜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일터에서 이와 비슷한 윗사람들의 요구를 접한다. 상사는 본래 까다롭기 마련이다. 까다로운 윗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베드로는 이 부분에서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까다로운 윗사람들에게도 순종하라고 한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면 아름답다고 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참 서럽고 힘들고 괴로운 이런 일을 감당할 근거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제시한다. 예수님이 애매하게 아무 죄도 없이 죽임 당하셨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 본을 끼쳐 우리가 따라갈 수 있게 함이라고 말한다(벧전 2:18-21).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담긴 의미는 이렇게 직장인들의 삶에 매우 적합한 적용을 가져다준다.

고난 주간에 직업인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크리스천 직업인의 정체성과 인간관계의 고민거리를 함께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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