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창세기강해 분류

창세기와 진화론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방 석종(方 錫 淙 ) 2013. 2. 3

에댄 낙원의 선악을 아는 나무

에댄 낙원은 히브리어로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환희와 풍요’이고, 다른 하나는 ‘동쪽의 지역 ’에댄‘이다. 페르시아 어로 파라디수스(낙원)라 부른다. 고로 에댄은 자연적으로 있는 동산(東山)이 아니라, 왕이 지은 정원(庭園)에 해당하는 구역에 가깝다. 인류 선사 시대부터 첫 번 째 인간 집단의 지도자가 거주하는 구역을 ’에댄‘ 낙원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동쪽 에댄을 창설하여 첫 번 째 사람들을 살게 하셨다면(창 2: 7), 그 지역은 4개의 강들, 피숀 강, 기혼 강,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다(창 10 - 14).이런 비옥하고 아름다운 지역의 중심이 바로 에댄이며, 그 안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아는 나무‘가 있었다. 고대 번역들 70 인 역(2300 년 전)과 불가타 역(1500 년 전)은 물론 영미와 독일어 번역들, 중국어, 일본어 번역은 마소라 본문대로 ’에댄 낙원의 선악을 아는 나무’로 번역 하였다. 그러나 한글 번역 성경들은 일제히 ‘에덴 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번역 하였다. 한자(漢字) 동산 ‘원’(園)을 따서 에댄 동산으로 직역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히브리어 ‘간’(ן󰕀 gan, 정원)은 ‘구획한 지역’에 해당한다. 자연 공간보다 인공적으로 설립 창설한 곳에 가깝다. 왕궁 안의 숲을 이룬 나무들 한 가운데 ‘선악을 아는 나무’ 히브리어로 정관사를 가진 부정형 동사, 즉 선과 악을 아는 (하다아트) 동명사(動名詞)에 해당 한다. 성경 독자들이 하는 질문이 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낙원에 데려다 놓으시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짓게 하셨느냐 ? 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즉 사동사(使動詞) 용법으로, 다른 사람의 힘으로 인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사람의 ‘욕망’에서 나온다. 선악을 아는 나무는 ‘먹음직했고, 보암직했으며, 지혜롭기 위해 탐낼 만한 것이었다( 창 3 : 6). 첫 번째 사람들은 ’선악을 아는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삼켰다. 선악을 구별할 필요가 없는 비신앙적인 폭군(暴君)이 되었다. “왜 하나님은 낙원 한 가운데 선악과를 두었습니까 ?”라고 하나님의 자유를 침해하는 죄를 저질렀다. 에댄 낙원의 환희와 풍요는 자기 맘대로가 아니라, 낙원 주인 말을 듣는 동안뿐이다. 낙원 안의 첫 사람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창 2 : 16 -17 ; 3 : 1 -3)을 알고 있었지만, ’선악을 아는 지혜‘를 구한 다음 하나님의 음성, 즉 자기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깨닫고, 인간의 지혜 앞에 계신 그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창 3 : 8 - 10). 최초 인류와 인간이 구한 ‘선악을 아는 지혜’는 영웅적인 승리의 세력이 아니라, 뱀과 같은 어두움의 세력이요, 매일 같이 어둔 세력에 노출 되어 ‘사느냐 죽느냐’의 투쟁과 형벌 속에서 몸부림치게 되었다. 낙원에서도 노동이 부과 되었지만(창 2 : 15), 사람은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고, 저주 받은 투쟁의 현실 속에서 노동의 댓가는 보잘것 없이 삶을 고달프게 하였다 (창 3 : 17 - 19). 낙원에서 저주 받아 노동을 해도 소출이 줄어 든 찌든 가난과 식량 부족으로 좌절당하였다. 그래도 하나님은 첫 번째 죄지은 인간 집단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가죽 옷을 지어 입혀 낙원 밖에서 살게 하였다(창 3 : 20 - 24). 그런데 그들 첫 번째 아담(인간) 집단에서 ‘아담과 하와’가 등장 하였다(창 3 : 20).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