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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족 양심고백은 인간의 죄(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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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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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석종(方 錫淙)

히브리어의 ‘아담’은 인류, 인간의 보통 명사와 ‘아담’의 고유명사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빙하기 4 만 년 전 조각상(彫刻像)인 머리는 사자, 몸은 사람인
상아조각이 독일에서, 2 만 1000 년 전 들소 조각이 러시아에서 각각 발견된 사진을 접하였다 (조선일보,,A 16, 2013,2,7 일자). 선사시대에도 이미 현대인 눈을 의심케 하는 예술조각품이 있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그럼 그들에게는 말과 문자도 있었을 거라는 상상이 갔다. 우리가 읽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도 우리가 모르는 전대(前代)의 역사소설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독자(讀者)들이 성경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태곳적 아담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빙하기 4만 년 전 작품이 땅속에 있다가 발굴 되었지만,‘아담’ 이야기는 인간 기억 전승(傳承)을 통해서 수 만 년 전부터 내려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아담과 하와 이야기는 기독교의 상속물이고, 지울 수 없는 원죄(原罪)의 주인공이라는 굴레 속에 ‘에댄 낙원에서 쫓겨난 자,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한자’ 이상의 다른 해석이 필요 없는 존재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죄의 고백에 회의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세계 민족들이 내놓은 문학작품의 인간 이해와 좀 다른 것을 느낀다. 인간과 국민적인 죄(罪)의 시인과 회개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초등, 중 고등학교부터 그리고 청년 시절에 읽고 들었던 세계명작 소설들을 보면, 프랑스의 빵 도둑 장 발잔 이야기, 기독교적인 용어인 영국의 소설 실낙원과 복낙원, 러시아의 소설 죄와 벌, 부활, 단테의 신곡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소설들은 도둑놈, 성범죄자, 부패한 상류 계급, 노름꾼, 살인자가 주인공들이다. 더욱이 구약의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전무후무한 메시아적인 형상의 군왕이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그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하고, 그의 남편을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자기아내로 삼아 솔로몬을 낳게 했다는 줄거리는 매우 불편하고, 꺼내기 싫고, 잊고 싶은 인간 죄악상이다. 이런 모든 죄는 창세기 ‘아담의 원죄’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서구 명작 소설은 그 내용이 성경과 기독교적이다. 마치 동양 소설 내용이 불교적-유교적인것과 비교가 된다. 그래서 서구 명작 소설을 이야기 하면, “그것 기독교야, 그만 둬”하면서 면박을 주는 상황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 ! 톨스토이의 ‘부활’은 무슨 설교와 같다. 그리고 장편(長篇)이다. 그러나 창세기 ‘아담과 하와’ 이야기는 단편(短篇)이다. 창세기 2: 4a - 25 절에 ‘인간 창조와 낙원 생활’( 창 2 : 4a - 7)이, 에댄과 중동 문명의 4 대 발상지(창 2 : 8 - 15)가, ‘에댄의 선악과(창 2 : 16 -18), ’말의 시작과 생물 이름(창 2 : 19 - 20), ‘인간(아담)의 사랑과 결혼’(창 2 : 21 - 25), 인간의 죄의식(창 3 : 1 - 12), ‘죄 지음, 타락과 저주 받음( 창 3 : 13 - 15), ’낙원의 황폐화와 극심한 고통(창 3 : 16 - 19), ‘낙원에서 추방’( 창 3 : 20 - 24), 아담의 두 아들 카인과 해밸(아벨, 창 4 : 1 - 24), 즉 인간 최초의 직업 농부와 목자( 창 4 : 1 -7), ‘형제의 살해’(창 4 : 8 - 16), ‘카인 자손과 여러 직업들’(창 4 : 17 - 24), ‘야웨 이름을 부르는 세대’( 창 4 : 25 - 26), ‘아담과 노아의 계보’( 창 5 : 1- 5, 6 - 32) 순서로 아담의 이야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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