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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 평화통일은 우리 민족의 오랜 숙원이자 비원이다. 올해는 1948년 정부수립으로 남북이 나뉜지 65년 된다. 많은 정치지도자가 바뀔 때 마다 남북관계는 긴장과 화해의 축으로 왔다갔다하며 남북정책이 요동쳤다. 남북분단은 우리민족에게 너무나 큰 시련과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였고 깊은 갈등과 애증의 시간을 지속해 오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70년을 통해 하나님 중심의 민족신앙과 종교를 체계화 하고 구약성경의 토대를 정립했다. 한국교회도 분단 65년을 지내며 많은 일을 감당해왔으며, 동시에 시대가 교회에 요구하는 역할도 중차대 하다. 독일 통일에서 교회의 역할과 관련하여 서독교회협의회(EKD) 총무였던 헬므트 감독은 한 설교를 통해 교회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우리 모두 통일을 기원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이었고 한 민족이었기에 통일이 되면 서로 잘 협력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통일이 되고 나니 우리는 너무 준비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통감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우리들의 경험을 시금석으로 삼아 통일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십시오. 사실 우리는 서로 서신을 주고 받을 수 있었으며 신문, 라디오, 텔레비젼 등을 볼 수 있었으며 방문도 가능하여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통일이 되고 보니 우리는 너무 서로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달라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때로는 통일을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동서독과는 달리 남북 사이에는 서신교환, 상호방문은 물론 서로를 알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동서독 사이에는 전쟁은 없었지만 남북한 사이에는 전쟁으로 서로 피흘린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북한통일의 문제는 독일에 비해 더 어렵고 난해하다. 피흘려 싸운 상대가 있으며 주위의 여러 다른 입장을 갖는 강대국들이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분단이란 먼 원인에서 출발한다. 비록 긴 시간이 흘렀다 해도 상처가 남아있으며, 그 상처를 우리는 때로는 싸매기도 했으나 더 많이 그것을 헐뜯고 상채기 내는데 골몰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으로 우리민족의 주체적 결정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그 결정의 핵심 주체는 남북한 국민들이다.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도 다만 남북한 국민의 다수의 뜻을 반영할 따름이며, 주변국도 마찬가지다. 남한의 국민의 결정과 같은 무게와 중요성으로 북한국민의 자주적 결정도 중요하다. 오랜 분단의 현 한반도에서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 국민의 다수의 결집된 통일의지와 북한주민의 통일 결의라 할 수 있다. 북한 주민의 통일에 대한 결의를 이끌기 위해 남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 믿음과 신뢰를 분명하게 보여 줄 확실한 방법으로 탈북자를 드는 전문가들이 많다. 탈북자를 우리가 얼마나 잘 돌보고 이 땅에서 잘 정착하여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한 기준이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한국교회가 인식해야 할 많은 과제 중에서 다음의 사안을 우선적으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한에 아직 복음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사람이 2300여 만명이 있다는 점이다. 지하교회 일부의 고난에 찬 신앙이 이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복음의 빛을 경험하지 못하고 영혼이 죽어가며 구원의 기회를 갖지 못한 백성이 있으며, 이들에 대한 전도는 한국교회의 절체절명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둘째, 북한 백성들의 헐벗고 굶주림에 대한 구제에 대한 깨달음과 결단이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벗이 되시며 그 한 소자를 대접한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한 것이고, 그리 아니 한 것이 곧 주께 아니한 것으로 지옥의 영벌을 받을 것으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일이다. 강도 만난 자를 피한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름없는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일이다. 강도 만난 자를 위해 선행을 베푼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16~17)”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결단하는 일이다.
셋째, 통일의 전위대로 이 땅에 보내어진 탈북민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착과 사랑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키며 복음으로 품는 일이다. 탈북민은 이 땅의 평화통일의 시금석이며 그 가능성과 타당성의 준거기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통일의 또 다른 절반을 담당하는 북한 주민의 신뢰와 믿음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 통일을 위한 기도는 물론 통일의 결정에 가장 중요한 북한 주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이 모아져야 할 때이다.
넷째, 궁극적인 민족 화해와 사랑을 통한 일치를 지향하는 일이다. 이십 여년 나뉘었던 야곱과 에서가 얍복강을 건너 화해하고 목을 껴안고 브니엘을 걸으며 오랜 갈등, 미움, 원한을 해소하고 화해하며 하나 되던 역할을 한국 교회가 담당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바람직한 통일은 일시적 사건으로 끝 날 수 없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인내와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사랑에 근거한 통합과 하나됨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나누는 오랜 기다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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