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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후회와 인간 멸망 창세기 강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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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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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야웨 하나님은 노아흐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까? 그것도 일반 기준치로 길이137,40 미터, 왕궁 기준치로 157,50 미터 크기의 대형 방주로 말이다. 현대인에게도 엄청난 배의 크기이다. 노아흐는 육신의 인간들과 땅이 썩어서 대홍수가 와서 땅의 모든 것이 죽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계약을 따라 그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창 6 : 9 -22). 그렇다면, 왜 노아흐는 인간의 정결과 정화를 외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만 하였을까 ? 현대인에게 노아흐는 소극적인 신앙인, 자기와 자기 집안 식구만 챙기는 이기적인 신앙인으로 비춰진다. 인간의 새 생명과 사회개혁에 관심이 없는 이다. 그것이 노아흐의 한계상황이다. 질문을 던진다. 너와 내가 노아흐 시대에 살면서 “ 야웨께서 인간의 죄악이 땅 위에 커졌고, 그들이 마음으로 계획하는 것과 목적하는 것이 악하기만 한 것을 보셨다. 야웨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상심(傷心) 상심하셨다.”(창 6 : 5 - 6)는 말씀을 듣는다면, 그리고 “ 나는 내가 만든 사람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창 6 : 7)는 하나님의 미래적인 결정을 안다면, 너와 나는 무엇이라 외칠까 ? 더군다나 너와 나의 주위에는 하나님 같은 괴력들이 내 삶과 일터와 가족들과 동료들을 주관하고 흔들고 있다. 행복과 가정 부양과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가 일터를 등지고 하나님 세력에 대항할 수 없는 독안 에 든 쥐들 같다. 누가 지구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겠는가 ? 욥은 “ (하나님)그는 ... 땅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매달아 놓으셨다.”(욥 26 : 7)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멸망은 가림이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 자연의 세력으로 대한다. 현대인은 지구촌의 온난화, 지진, 홍수와 각종 재앙을 무절제한 인간 문명의 결과로 보거나 아니면 순환적인 자연현상으로 보려고 한다. 인간 각자의 책임과는 거리가 있는 해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록자는 인간의 죄의 보편성을 성찰하고, 그것을 하나님 자신의 입에서 듣게 된다.
창세기는 인간의 타락 이후 카인의 살해 행동, 카인 자손들의 잔인무도함, 특권 고위층의 전횡(專橫, 권력으로 제 마음대로 함, 창 6 : 2 - 4) 이 하나님을 후회하게 하였다고 한다. 인간 창조 후 유례를 찾기 힘든 ‘죄악’을 본 하나님은 이른바 자연 재앙인 ‘대홍수’심판과 인간의 멸망을 노아흐에게 알렸다. 썩은 땅과 부패한 인간 세력권에서 개혁은 늦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수의 의인(義人) 집단만 불러내어, 고패르 침엽수로 방주를 만들어 지상(地上)에서 떠나도록 명령하였다. 죄악이 밟고 사는 땅, 죄악이 성장시킨 무절제한 경제적인 이권의 생산지, 고위층의 부도덕한 쾌락의 온상, 무력한 백성들을 묶어 놓은 직장의 쇠줄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인간집단 세력으로는 불가항력인 것이었다. 자연을 창조하신 배후의 하나님은 이제 ‘자연 현상’으로만 알았던 ‘물의 홍수’를 불러다가 오만 무도한 인간을 멸망시킨다. 자연의 황페 화와 홍수는 인간의 불법의 죄와 관련된 것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에게서 선포되었으며, ‘의인’만 살고, 다른 이는 구하지 못한다는 ‘개인 책임적인 신앙’에서 노아 방주 구원사건이 이해된다고 하겠다 (창 19 : 29 -30 비교 ; 사 54 : 9 ; 겔 14 : 13 -14,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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