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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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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고등학생 시절 책상 앞에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루소)란 글을 써 붙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깊은 의미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교훈을 따라 다던 날이 있었다. 동서양을 통해 역경과 고난이 한 인간을 담대하고 강하게 성장시킨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고통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 흥진비래(興盡悲來,기쁜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온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 등은 현재의 어려움을 참고 지금의 즐거움을 나만 누리지 않고, 나누어줄 때 머지않아 기쁨이 오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특별한 교육이나 전문적 지식이 없이도 강인한 의지와 역경을 헤처 나가며, 용기로 주변을 정리하고 점차 영역을 넓혀 세계 최대국가를 형성한 칭기스칸이 있다. 그의 생을 재미있게정리한 글들이 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쫒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면서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와 촌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마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는 10만 명, 백성은 어린애와 노인가지 합쳐 200만 명도 되지 않았다. 배운데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절망 속에 있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원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주변의 여러 가지 제약과 비방을 헤치고 민족을 구한 이순신 장군의 삶을 요약하며 희화하여,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말단 수비장으로 변방오지를 돌았다. 윗사람 지시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수차례 파면을 당했다. 몸아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상부의 지원이 없다고 좌절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일구어 스스로 군자금을 마려하여 적과 싸워, 23전 23전승을 거두었다. 최고 권력자인 왕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함을 받아 옥살이를 하고,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자원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폐선 12척으로 적의 대형선 133척과 싸워 무찔렀다.’라 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가장 현명한 대통령의 한사람으로 평가한다. 그의 젊은 시절과 대통령 당선과 관련하여 삶을 요약하여 다음 같이 얘기되어 지기도 한다. "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업을 하다 두 번 망했고, 선거에서는 여덟 번 낙선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인생 막바지에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제 이름은 링컨입니다."
링컨은 이후 노예해방으로 인간의 근원적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남북전쟁으로 갈등속의 미국을 화합과 통일의 중대한 초석을 쌓았다. 그는 정치적 경쟁자를 포섭하고 포용하여 장관에 임명하여 타협과 조화의 정치로 미국 정치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만드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곤 했소, 이 신발도 바로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라고 말은 마친 상원의원은 조롱하듯이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서 비웃음과 놀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때 링컨은 조용히 서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엔 눈물이 고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중엔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신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약 신발이 불편하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에 조금은 손봐드릴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 고쳐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
상원 회의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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