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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진화론(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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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진화론( 39 )


형 레아와 ‘하나님 씨름’을 한 라헬’

그 때에 라헬이 말하기를 “ 나는 하나님의 씨름을 나의 언니와 씨름하여 이길 수 있었다.”(창 30 : 8) ; “그 때 어떤 이가 동이 틀 때까지 그와 [야코브]와 씨름을 하였다.”(창 32 : 25[24])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창 30 : 8 절에 ‘ 낲투울레 앨로힘’(하나님의 씨름)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뒤에 이어서 나오는 ‘닢탈티이 임 아티이’ (내가 나의 언니와 씨름하다)와 연결되어 ‘나는 하나님의 씨름을 나의 언니와(대항하여)씨름하였다’로 읽는다. 이 이야기는 야코브가 얍보크 강가에서 어떤 남자와 씨름한 것과 닮은 정황을 알게 한다. 왜냐하면 야코브가 ‘하나님 또는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씨름’은 야코브가 아니라 ‘라헬’이 그의 언니(형) 레아와 일찌감치 경험한 역사가 창 30 : 8절에 나온다. 즉 야코브가 그의 형 에사우 때문에 하나님과 씨름한 것(창 32 : 25)이 라헬이 그의 언니 레아 때문에 ‘하나님과 씨름’한 것(창 30 : 8)과 쌍알이 지고 있다.
‘하나님과 씨름하다’의 히브리어 동사(動詞) ‘파탈’은 ‘아바크’ 또는 ‘(수동태) 야아베크/헤아베코(게제니우스 사전, 7 쪽 참조)와 동일하게 ’겨루다‘(씨름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이런 동사는 사람과 사람끼리 또는 사람과 하나님이 겨루는 동작에 쓰인다. 그래서 “ 너는 ... 이스라엘이라고 하여라 너는 하나님과도 사람들과도 겨루어서 이겼기 때문이다”(창 32 : 29(28) ) 는 구절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과 씨름‘하다는 정황이 분명히 야코브의 아내 ’라헬‘이 그의 언니 레아하고 연결되어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씨름이 우선은 ’사람과 사람끼리의 씨름이다. 따라서 야코브가 어떤 남자와 동이 틀 때까지 씨름한 것도 깊이 보면, 그는 야코브의 형 ‘에사우’하고 야코브가 겨루었던 사건임을 알아차릴 수 있겠다. 이는 창 32 : 25 - 30 절과 33 : 10 절에서 나중에 상세하게 보겠다.
왜 라헬이 “나는 하나님의 씨름을 나의 언니 레아하고 씨름하여 이길 수 있었다”고 하였을까 ?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으며,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 우선 한 가정에 두 딸이 있는 경우, 관습적으로 맏형인 언니가 먼저 시집을 가는 것이 정도(正道)이다(창 29 : 26 -27 절 참조). 그럼에도 야코브와 라헬은 얼마나 사랑을 했던지 7 년을 ‘하루 같이’ 보내면서 결혼을 꿈꾸지 않았던 가 ? 그러나 그들은 친사촌뻘인 형 ‘라반’에게 완전히 당했다.
죽자 사자 사랑하는 두 남녀는 또 한번 7 년의 노동과 친정에 얹혀살아야 하는 억압생활을하면서 내심 언니 레아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 언니 레아가 네 아들들 르우벤, 쉼오온, 레위, 유다를 계속 낳는 동안, ‘라헬’은 아기가 없었다. 할 수없이 라헬은 몸종 빌하를 붙여 주어 둘째 아들 ‘납탈리’를 낳으면서 한 얘기가 “나는 하나님의 씨름을 나의 언니 레아하고 씨름하여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형제지간 아들 낳기 경쟁이었다. 그런데 한글 번역 성경들 개역개정, 천주교 성경, 표준 새 번역과 공동 번역은 물론 영어 역과 독일어 역에 마소라 본문의 “낲투울레 앨로힘”(하나님과의 씨름)이 빠져 있다. 중요한 핵심 용어가 없으면 ‘믿음의 증언’을 위한 신학적인 해석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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