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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경영 | 아름다운 부자, 경주 최부자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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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섭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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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특권계층의 책임)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부자 여인 김만덕과 일제시대 여성 경영자 백선행이 그들이다. 여기에 우리는 또 다른 한국판 아름다운 부자 경주 최부자댁을 생각하게 된다.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을 쓴 경제학자 전진문 박사는 최부잣집이 흉년 때 경상북도 인구의 약 1할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구휼을 베풀었다고 추산했다.

보통 춘궁기나 보릿고개 때인 3, 4월에는 한 달에 약 100석의 쌀을 나눠줬으므로 1만 명 정도가 쌀을 얻어갔다고 가정한다. 어떤 때는 약 800석이 들어가는 큰 창고가 거의 바닥이 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신라의 수도이던 경주는 그렇게 1천년의 저력에 어울리는 한 부자 가문을 냈다.

‘경주 최부잣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가문은 조선조 중엽 진취적인 기상으로 농업을 일궈 만석꾼의 지위를 이룩한 뒤 10여대 300년 동안 이 부를 현명하게 지켜내고 선하게 활용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비록 이 집안은 다른 나라의 거대부호 가문처럼 부의 규모가 크지도 않고, 다른 명예와 권세를 추구해 성공하지도 않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평가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최부자 댁과 관련된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부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서기 1671년 현종 신해년 삼남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경주 최부자 최국선의 집 바깥마당에 큰 솥이 내걸렸다. 주인의 명으로 그 집의 곳간이 헐린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굶어죽을 형편인데 나 혼자 재물을 가지고 있어 무엇하겠느냐. 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라. 그리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혀주도록 하라.’

큰 솥에선 매일같이 죽을 끓였고, 인근은 물론 멀리서도 굶어죽을 지경이 된 어려운 이들이 소문을 듣고 서로를 부축하며 최부잣집을 찾아 몰려들었다. …흉년이 들면 한해 수천, 수만이 죽어나가는 참화 속에서도 경주 인근에선 주린 자를 먹여 살리는 한 부잣집을 찾아가면 살길이 있었다. …그해 이후 이 집에는 가훈 한 가지가 덧붙여진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불경기와 흉년은 없는 자에게는 죽음과 절망이었지만, 가진 자에게는 부를 엄청나게 증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오늘날도 불황과 부동산 가격하락을 기회로 많은 재테크와 부의 축적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그런 부자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최국선은 아들에게 서궤 서랍에 있는 담보서약 문서를 모두 가지고 오게 한다. ‘돈을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없더라도 갚을 것이요, 못 갚을 사람이면 이러한 담보가 있어도 여전히 못 갚을 것이다.

 이런 담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겠느냐. 땅이나 집문서들은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거라’…” 라고 했다. 최부잣집 창고는 흉년이 들면 열렸다. 굶주리는 이들을 구휼하기 위해 800석이 들어간다는 경주 교리의 이 창고 문이 열렸다.

 

최부자 댁의 다음의 경영철학들은 상생과 덕을 펼치는 큰 경영의 본을 보였다.

첫째, 모두를 살리는 부를 실현했다. 부의 생성과 축적 그리고 활용에서 누구를 해치지 않고 각 주체를 가능하면 모두 살리는 부를 구현했다.

둘째, 단기 이익보다 장기 이익을 추구하며, 경제 외적 노하우를 통해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였다. 당대만의 성공이 아니라 긴 성공을 위해선 자기와 가문을 제대로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하고 대비했다.

셋째, 장기계획과 생존의 경영을 통해 가문의 장기 생존과 발전을 실현했다. 가문의 동질성과 순정성을 10여대 300년 동안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드물다. 더구나 전란과 민란, 외침, 식민통치, 체제 대립 등으로 점철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적 부와, 선행을 계속하는 명가문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넷째, 가업을 교육과 문화로 유지, 발전 시켜 조직의 성장을 지속했다. 최부자댁은 드물게 가문의 도덕률, 처세술, 경영관 등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겨 후손을 교육하는데 성공했다. 기록을 통해 경영비법을 후대에 알리고 교육하였으며, 훈련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최부잣집 300년 성공의 결정적 비밀인 교육은 성공하지 못하거나 덜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다섯째, 바른 목적에 부를 사용하는 바름을 실천한 명문가이다. 최부자댁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자신의 부를 독립운동과 교육에 투자한다. 일제와 해방 이후 격동기에 가문은 역사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과 대학 설립 자금으로 모두 돌린다.

 

불황의 시대에 실업자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는 참 부자의 더 큰 경영과 사랑을 펼치는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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