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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보크 강가 ‘프니엘’에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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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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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야아콥은 그 장소의 이름을 프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라 불렀으니,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여 보았는데도, 내 생명을 건졌기 때문이다.”(창 32 : 31[30]).

지리적으로 프니엘은 숲이 있고 강물이 흐르는 비옥한 동부 요르단에 있다. 야아콥이 파단 아람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 오던 중 처음엔 야아콥의 진영 마하나임(창 32 : 3[2]), 그 다음 혼자 남았던 곳 ‘프니엘’(창 32 : 25, 31[30]), 에사우 형과 헤어진 다음 도착한 ‘수코트’(창 33 : 17) 그리고 서부 카나안 도시 ‘셔캠’(세겜, 창 33 : 18)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베트엘’(창 35 : 1, 6, 15)에 자리를 잡고, 베트엘에 제단을 세운다.
정리하면, 마하나임 - 프니엘 - 수코트 - 셔캠 - 베트엘 은 지형적으로 동(東)에서 서(西)로 향하는 가로의 평행선으로 가다가 베트엘은 남쪽으로 내려간 곳이 된다.
우리는 야아콥이 이스라엘로 개명되는 내용을 두 군데서 본다. 하나는 얍보크 강가 프니엘이고(창 32 : 29[28];32 : 24b-33 유목민 자료/ 야뷔스트 기자), 다른 한 곳은 베트엘에서 야아콥이 이스라엘로 개명되는 이야기를 본다(창 35 : 10 앨로힘 신명을 부르는 제사문서 자료). 어째서 야아콥은 두 번씩 반복해서 ‘이스라엘’이름으로 개명되어야 하였을 가 ? 현재까지는 확답을 찾을 수 없다. 전승사에서 야뷔스트 자료(창 32: 24b-33 )와 제사문서 자료(창 35: 9-13,15)가 서로 다른 신앙들로 서술한 문서적인 모순관계가 원인이 된다. 이는 야아콥이 어느 남자와 씨름으로 사투(死鬪)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허벅지 다리를 다치면서 매달렸을 때, 형 에사우 또는 에사우의 사람이 야아콥에 대한 살해를 포기하고, 새벽 미명에 떠나려는 순간, 투쟁에 관여한 야웨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 같다. 형 에사우가 아우 야아콥에 대한 살해를 포기한 양보 또는 관용이 야아콥의 말 “저는 분명히 형님 얼굴을 하나님 얼굴을 뵙는 것처럼 보았습니다.”(창 33 : 10 하반절)라는 것에 해당하는 것 같다. 즉 형 에사우가 그가 잃은 장자 권과 축복 권으로 인해 야아콥을 죽이려고 씨름을 하였지만, 이길 수없음을 알고,, 동이 트기 전에 멀리 사라진 것이 아닌가 (창 32 : 23- 26[22-26])? “그후 야코브에게 이름을 물은 이, 야아콥을 이스라엘이라 개명해 준 이,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자인 야아콥을 축복해 준 이 (32 : 29-30)”는 베트엘에서 야아콥을 이스라엘로 개명하고, 복을 주신 엘 사다이“(창 35 : 9 - 11; 창 17 : 1, 5 참조) 와 겹치는 신학적인 내용이 된다. 양 자료(창 32:29-30; 35 : 9-11)에서 공통적인 것은 야아콥의 이스라엘 개명과 야아콥이 축복을 받은 것이 나오지만, 제사문서인 창 35 : 9-11에는 야아콥과 에사우 두 형제의 씨름 이야기가 없다. 다만 야아콥이 과거에 서약했던 장소 베트엘(창 28 : 19 참조)에서, 즉 야아콥이 파단 아람에서 떠나, 동부 요르단 마하나임-프니엘-수코트를 지나 서부 요르단 셔캠까지 와서 남쪽 베트엘에 온 다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계시를 받는 가운데 과거 20 년 전에 형 에사우의 살해의 복수(復讐)와 두 형제결투(決鬪)의세속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사건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짐작 된다. 두 형제의 씨름에서 형 에사우가 아우 야아콥을 절뚝발이로 만들었지만, 자기가 결투에서 이기지 못한 약점을 알고, 살해를 포기하고 떠났을 때, 목숨을 구한 야아콥은 결국 에사우가 장자권과 축복권을 방해할 자가 못된다는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과 사람과 겨룸에서 이겼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구원 사건이 신학 화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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