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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일상, 거룩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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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일상, 거룩한 식사

우리의 오늘 하루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잠자고 세수하고 아침 먹고, 학교로, 일터로, 놀이와 쉼터로, 어떤 이는 집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삶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과 때론 혼자서 주어진 시간을 보낸다. 열심히 하루를 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씻고 가족과 시간을 나누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잔다. 우리의 평범한 반복과 일상은 때로는 지루하고 탈출하고 싶기도 하다. 무의미해 권태와 실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삶의 마지막에 선 환자에게 값진 한 시간이며, 사형수에게 생명을 바쳐 연장하고픈 생명이다. 헬랜 켈러(Helen Adams Keller) 같은 장애인에게 오늘 밝은 하루는 너무 아름다운 시간일 것이다. 어느 작가는 “나는 밥벌이라든지 돈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속적인 가치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인간에게 소중한 거예요. 돈은 엄청나게 소중한 겁니다. 돈을 열심히 벌고, 아껴 쓰고, 잘 쓸 줄 알아야죠. 돈을 하찮게 알고, 돈벌이를 우습게 알면서, 자기는 마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도 안 하고 경멸해요. 그러니까 나는 밥을 열심히 성실하게 벌고, 그 안에서 도덕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라 썼다.

오늘 한 끼의 식사는 아름답다. 한 잔의 차와 커피도 그러하다. 최고의 가치와 높은 산을 오른 것도 중요하고 아름답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과 오가는 출퇴근의 길과 오르내리는 지하도와 집 앞의 낮은 언덕배기를 걷는 것도 아름답고 귀하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알피니스트들의 최종목적지는 어디인가? 눈보라치고 웅크린 크래바스와 엄혹한 추위와 눈사태를 헤치고 산정에 깃발을 꽂는 것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값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최종 목적지가 있다. 사랑하는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덜 멋져 보이고, 덜 값있어 보일지 모르는, 그래서 다시 지루해 보일지 모르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최종목적지가 있다.

오늘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삶에 힘들고 지쳐있다. 경쟁 일변도의 이 살벌한 시대를 살아내 는 게 힘들다. 황금만능의 승자독식 사회에 우리는 외롭고 아프고 숨 가쁘다. 그런 만큼 일상을 살고 견디고 버티는 일은 힘들어 거룩하기까지 했다.

이전 시대에도 우리 일상의 삶은 쓸쓸한 것이었을까? 우리의 일상의 식사는 거룩한 것인가? “...몸에 한 세상 떠넣어주는/먹는 일의 거룩함이여/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이 세상에 혼자 밥 먹는 자들/풀어진 뒷머리를 보라/...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거룩한 식사/ 황지우). 시인은 한 노인의 식사에서 일상의 거룩함을 노래하고 있다.

추운 길을 걸어 따뜻한 일상의 가정으로 돌아오는 일은 아름답고 기적과 같다. “...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가정/박목월).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딸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힘든 삶에는 서로 함께하고, 나누고, 옆에 있어 줄 때에 적당한 분량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보람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우리 시대 아버지가 걸어온 길, 어머니가 걸어가야 할 길, 그것은 어쩌면 ‘눈과 얼음의 길‘ , ‘기다림과 쓸쓸한 길‘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삶의 즐거움과 희열로 웃고 미소짓는 평범하나 결코 쉽지 않는 우리들의 일상이 있다.

김현승 시인은 우리 시대 한 사람인 아버지를 노래한다. 눈물과 보람과 술잔에 담긴 애환과 쓸쓸함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라고 노래한다. 시인에게서 눈물은 슬픔이기 보다 값진 순수와 가치의 상징임을 우리는 안다.

세월호 이전에 우리의 일상은 그럭저럭 행복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심각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낼 만했고 우리의 무뎌진 양심과 적당히 게으른 지성에 그리고 나와 가족을 사랑한다는 이기적 동기마져 잘 포장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숨쉬는 것이 아쉽고 부담스럽다고 시인이 노래하고, 어른으로서 젊은 아이들에게 못다한 의무와 책임에 무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평범하게 잠자고 밥 먹고 공부하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을 기억하며 그 남은 삶을 우리가 대신 값지게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우리의 일상에 감사하자. 한 끼의 식사의 거룩함을 나누고 이웃에 나누어 주자. 더 큰 기쁨과 보람이 가슴에 가득 차게 됨을 확인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 빵은 혼자 먹을 때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이웃과 나눌 때는 영혼의 선물이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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