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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칼럼ㅣ가나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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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석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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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런 훈련을 목적으로 모세를 광야로 보냈다. 모세는 애굽에서 왕자와 지도자로서 말과 일에 능했다(행7:22절). 자신감이 넘쳐 무엇이든지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광야 생활 후 그는 나이 들고 무능력하게 보이는 촌부(村夫) 비슷한 목자로 변했다.

애굽에서 천군만마를 지휘했던 장군의 기상은 어느덧 사라지고 힘없는 노인네가 되었다. 이젠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세상 일이 다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모세가 무능력한 사람처럼 처신한 모습과 자세에서 잘 증명된다(출3:10-11, 13, 4:1, 10, 13-17절). 하나님의 종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무능력(無能力)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이 때부터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깨닫기 시작하며 종(從)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할 것이다.

모세를 부르며 하나님은 족장의 언약(言約)을 모세에게 상기시켰다(출3:6-10, 15절). 그리고 그의 지팡이를 이용하여 초자연적인 기적들(출4:1-17절)을 행하도록 했다. 그의 소명은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그의 족장에게 한 언약(言約)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과 깊게 관계됨을 알게 했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언약의 하나님은 인자(仁慈: 헤세드)하고 진실(眞實: 에메트)하여 반드시 이스라엘을 도울 것이란 확신을 모세에게 주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지도자가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었다.

당하는 고통과 그 심도가 커질수록 이들은 족장의 하나님 여호와의 약속에 의존하며 더욱 열심히 도움을 간구했다(출2:23-25절). 하나님도 족장 언약을 기억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바로에게 보냈다. 애굽의 바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모세에게 응했다. 예전 애굽의 왕자라는 신분을 가졌던 모세가 자신의 노예로 고생하는 히브리인의 지도자로 나타난 것에 흥미와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애굽의 부강함과 번영에서 나오는 권세와 영광에 대한 자부심에서 바로는 모세 앞에서 여유를 부렸다.

바로는 모세의 요구대로 이스라엘을 쉽게 내보낼 수 없었다. 첫째 애굽의 신(神)들이 노예 히브리 인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굴복할 수 없었다. 둘째 애굽의 바로가 노예 지도자의 말을 순순히 들을 수 없었다. 셋째 이스라엘의 노동력은 애굽을 위해 경제적으로도 절대로 필요했다. 그리고 넷째 쉽게 이스라엘을 보냄으로 올 이방인들의 조롱과 멸시를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본 인간론(人間論)에 의해서도 이것은 잘 증명된다. 흙이라는 물질(物質)로 만들어진 인간 형태에 하나님은 그 코를 통해 자신의 생기(生氣)를 불어 넣었다(창2:7절). 그로 인해 물질인 몸 안에 동물적인 차원의 생명(生命)이 그리고 정신적 차원의 마음이라는 인격(人格)이 나타났다. 이로써 인간은 영적(靈的) 존재로서 정신적(精神的), 동물적(動物的) 그리고 물질적(物質的)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영(靈)이 중심(中心)이고 근본(根本)이다. 그리고 영적 존재인 창조주 하나님이 물질 세계를 창조한 사실에서도 잘 증명된다. 성경의 창조 기사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주관한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 자신의 통치를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창1:26절). 그러므로 앞으로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문화(文化) 영역에서 세워지고 확장될 것이다.

모세와 바로 사이 싸움도 이 사실을 잘 증명한다. 이 점에서 이 둘 사이 싸움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사이 싸움이었다.

여기서 구약 시대의 구원이 장소의 이전이란 형식으로 나타남이 다시 확인된다. 구약의 구원은 항상 무엇으로부터(from)의 해방과 탈출을 뜻했다.

그러나 장소의 의미를 갖는 구약의 구원은 구속사적(求贖史的)이어야 했다. 하나님은 십대 재앙을 통해 애굽을 보편적으로 심판을 행하는 한편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또한 일했다. 이 모두 족장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성취에 구속(救贖)의 의미가 가미되었다. 마지막 재앙은 장자 죽음의 재앙이었고 이에서 구원 받는 유일한 방법은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믿음으로 유월절 규례를 지킨 이스라엘의 장자는 모두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애굽의 장자는 아래로 노예로부터 왕에게 이르기까지 그리고 목축에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더 이상 애굽이 파멸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어 바로를 비롯한 애굽 인들이 스스로 이스라엘에게 찾아와 애굽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발견된다. 장자 죽음이라는 상징적(象徵的)인 의미가 곧 신학적(神學的)인 의미가 되었다. 장자(長者)는 가문(家門)의 대(代)를 이을 자식이다. 아버지 기력(氣力)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신21:17절).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가문의 멸망을 뜻한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보편적인 심판에 의해 애굽이 망했다는 것을 상징하고 의미했다. 이 심판 후에도 애굽은 여전히 이 지상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 이스라엘의 장자는 보존됨으로 하나님의 보편적인 심판에서 이스라엘은 구원 받았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은총으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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