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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성령론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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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본철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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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성령론의 갈등

성령사역의 본질(18)

 

배 본 철(성결대학교 교수, 성령운동연구가)

 

한국교회가 처음 설립되었던 19세기 말에 한반도를 찾은 대부분의 서양 선교사들은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신앙 속에는 성령세례의 능력을 사모하며 강조하는 동기가 역력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도 역시 강한 성령운동이 일어나기를 소망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러한 염원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의 대부흥운동을 일게 해주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보고서 내용을 보면, 집회 때 많은 신자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당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는 중국인 가옥명(賈玉銘) 교수의 『성령론』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도 성령세례의 경험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몇몇 초기 선교사들의 글 속에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시적인 사건으로 보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이 소개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이론이 한국교회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에는 아직 보편화되지 못했으며, 또한 한국교회가 성령론을 신학적으로 논하기에도 아직 미숙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한국인 신학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이 한국 기독교계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카이퍼(Abraham Kuiper), 워필드(B. B. Warfield), 개핀(Richard Gaffin) 등으로부터 개혁주의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신학자들이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을 신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 노선의 중심 인물은 박형룡 박사였는데, 그가 1960년대에 성령론을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령세례에 대한 신학적 갈등이 한국 신학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개혁파 그룹 내에서 뜨거운 성령세례론 논쟁이 지속된 과정은 박형룡 박사의 노선에 맞서 전통적 한국교회 성령 신앙을 강조하던 차영배 박사가 본격적으로 바르트(Karl Barth), 개핀, 스토트(John Stott) 등의 성령론을 비판하는 작업과 맞물려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현재까지 개혁파 신학계에서는 성령론에 관한 매우 복잡한 갈등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두 조류의 신학적 성격은 19세기로부터 한국교회로 이어온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선과 이와 대치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 사이의 갈등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이라는 말과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이라는 말을 좀 비교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개혁파 성령운동 노선에서는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죄성에 대한 제거설(Eradication)을 부인하고 일반적으로 죄의 경향성에 대한 반작용설(Counteraction theory)이나 또는 억제설(Suppression)에 입각한 성결 관념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살아갈 때 지속적으로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는 차원으로 성결의 문제를 풀어나갔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봉사의 능력’(power for service) 중심의 성령세례를 강조하였습니다. 이 노선에서 두각을 나타난 인물들 중에는 홉킨스(Evan Hopkins), 모울(Handley C. G. Moule), 마한(Asa Mahan), 피니(Charles Finney), 무디(Dwight L. Moody), 토레이(Reuben A. Torrey), 고든(Adoniram J. Gordon), 심프슨(A. B. Simpson)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인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노선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주의신학의 대표자들은 카이퍼,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 개핀, 스토트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신학자들을 통해 정통 개혁주의신학이 한국에 가르쳐져 왔습니다.

개혁주의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개혁파 계통의 신학교들은 정통 개혁파 성령론에 따라 성령 은사의 중단성(中斷性)과 함께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單回性)을 강조하는 성령론의 한 노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개혁파 계통의 교회와 신학교 내에서 일어난 성령론 논쟁들은 이 두 노선 상의 갈등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령세례론 논쟁의 핵심에는 성령의 은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은사의 지속성 문제를 허용할지 여부에 따라 성령세례에 대한 정의가 또한 명백히 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언하며 신유를 강조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미국에서 정통 개혁주의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의 눈에 매우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의 개혁주의신학의 노선은 오늘날에는 사도 시대와 같은 기적과 은사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은사중지론의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 격으로 최근에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특히 강조하는 은사갱신운동과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등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영성운동들이 한국교계에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러자 복음적 성령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 성령론 분석의 새로운 틀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여러 신학 전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는 일이 성령세례의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 성령의 나타남과 은사들을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은사들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한 예입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그동안 은사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던 개혁주의신학에 새로운 시각적 전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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