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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인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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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인들’, 어떻게 할 것인가?

서명수 교수(협성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여러 지명들 중에는 실재적 의미에 상징적 의미가 더해져 새로운 의미공간으로 확대되어 공간 이상의 공간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요단강의 경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에는 물이 흐르는 강폭이 좁아져 한국의 개울 수준에 지나지 않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의 큰 강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강일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적 사유와 상상에 자리 잡은 요단강은 결핍과 고통, 연단의 상징인 광야와 풍요와 기쁨, 약속의 성취를 상징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사이에 흐르는, 반드시 건너야 할 분할과 경계의 강이다. 이 강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를 흐르는 강의 이미지로 확대되어 사유되고 노래로 불리기도 한다.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무거운 짐 벗어버렸네.” 찬송가(246장)의 한 구절이 잘 표현해주듯이 가나안은 실재하는 팔레스틴 지역을 넘어 신앙적 상상의 공간, 천국을 지칭하는 의미공간으로 다가온다.

가나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기억되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재하는 한 지역으로서의 가나안 땅은 결코 풍요로운 땅이 아니다. 공간의 실재적 여건과 상황은 상상과는 달리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적 사유 속에서 가나안이 갖는 의미는 지상적 풍요를 넘어서 천국의 이미지가 가미된 행복의 공간이다. 문제가 많고 인생사 어려운 일들이 연속될 때는 누구나 낙원의 이미지, 천국의 이미지를 간직한 가나안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가나안이라는 지명이 전혀 다른 의미의 조어(造語)로 활용되고 있다. 스스로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만, 그리고 나름대로 성경도 읽지만 교회는 ‘안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여 ‘가나안 교인’이라 한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이들 중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출석하여(46.7%) 대략 5-15년 정도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으며(43%), 교회에 다니는 동안 열성적으로 활동한 경험(90.3%)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이 되는데, 대체로 지나친 교권주의와 목회자의 권위주의, 타종교에 대한 맹목적 비판, 교회재정의 편파적 운용과 지출, 교인 상호간의 형식적 우대, 교회의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적 방식 등이 이들로 하여금 교회에 등을 돌리게 하는 이유들로 제시되고 있다. 이들 중 42%는 교회 자체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은 교회의 여러 가지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하고 있으며(30.3%), 목회자에 대한 불만(24.3%)과 교인들에 대한 불만(19.1%) 때문에 교회를 등진 이들이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시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23.4%), 그리고 30대에 이르러(25%) 교회를 떠난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교회를 떠난 사람이 10년 이상 교회 밖에서 ‘가나안 교인’으로 살아가는 비율은 과반 이상이다(52%). 그러나 이들은 언젠가는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53.3%).

이들은 믿음 없는 자, 신앙의 배신자 정도로 여기고 방치해두는 것은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이들은 분명 ‘교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실망하여 교회 밖에 있는 것일 뿐이다. 이들의 반 이상은 언젠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보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막9:42) 그렇다. 한 우리 안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한 우리 안에 들기를 원하시는 주님(요한10:16)은 소자 한 명이라도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이런 뜻을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이, 총칭하여 교회가 하루속히 낡은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언제? 지금, 바로!

서명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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