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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주의 성령세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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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본철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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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주의 성령세례론

성령사역의 본질(20)

 

배 본 철(성결대학교 교수, 성령운동연구가)

 

은사주의 유형의 첫째 성령세례론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입니다. 원래는 웨슬리안 노선의 목회자였던 파함(Charles F. Parham)은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기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1901년 Topeka와 1906년 시무어(W. J. Seymour)가 이끈 미국 아주사(Azusa) 거리의 부흥에서는 물론, 현재까지 방언을 성령세례와 직결시키는 전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 신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하나님의성회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주장하는 전통 오순절주의의 대표적 교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중생=성령세례, 이후 은사적 성령 충만’ 유형입니다. 일반적으로 ‘제 3의 물결’에서는 ‘성령세례’ 또는 ‘성령 안에서 세례 받아지는 것’이라는 용어 대신, ‘성령 충만’ 또는 ‘성령에 의한 능력의 덧입힘’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제 3의 물결 운동가들은 대부분 회심과 성령세례가 동시적 경험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생하게 될 때 성령께서 내주하시지만, 그러나 저절로 그분의 능력과 은사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노선은 앞의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 충만’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개혁주의신학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그러나 반면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크게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또한 개혁주의신학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3의 물결’은 국내에 잘 알려진 윔버(John Wimber), 와그너(Peter Wagner), 크래프트(Charles H. Craft), 힌(Benny Hynn) 등의 사역과 저서의 영향으로 현재 많은 독자층과 지지자들을 얻고 있습니다.

현대 은사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제 3의 물결’ 운동(the Third Wave Movement)은 직접적으로 윔버와 함께 한 풀러 신학교의 와그너 교수의 영향 하에서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나타내었습니다. 와그너는 윔버를 초빙 강사로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 강의를 개설하였는데, 이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의 수는 800여명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이 강의에서 학생들은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와그너는 ‘제 3의 물결’을 ‘제 1의 물결’인 1900년 초 오순절운동이나 ‘제 2의 물결’인 1960년대의 은사운동과는 구별 지었습니다.

빈야드 신학(Vineyard Theology)은 또한 많은 부분에 있어서 풀러의 신약학 교수인 래드(George Eldon Ladd)의 가르침에 의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래드는 하나님의 나라를 단지 복음전파의 용어로서만이 아니라, 사단의 권세를 제압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현존으로 또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빈야드의 능력 대결(Power Encounter) 또는 능력 전도(Power Evangelism)의 강조가 그 신학적, 성서적 기반을 제공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제 3의 물결’ 같은 이런 마지막 유형의 성령세례 관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한국교회 내의 혼잡한 영성운동의 기류를 바로 잡으려면 필연적으로 성령세례론에 대한 이해와 일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언가 이런 관점으로 성령론 연구를 전향시킬 좋은 방법은 없을까를 많이 고민하며 연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 드린 성령세례의 여러 가지 유형들을 정리하다가 퍼뜩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여러 가지 유형들은 곧 성령세례의 두 가지 양 차원의 각기 다른 표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성령세례는 영적 사실의 차원과 경험적 차원의 두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성령세례의 영적 사실의 차원’은 일반적으로 성경에 명확하게 그리고 획일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6장 1-10절이나 고린도전서 12장 13절과 같은 구절들은 성령세례의 영적 사실의 차원을 획일적으로 다룬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반드시 성령세례의 영적 사실의 차원만 제시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의 ‘성령의 권능’, ‘성령 받는 것’, ‘성령이 임함’ 등에 대한 기록들은 ‘성령세례의 경험적 차원’에 더욱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서, 반드시 획일적이라고는 볼 수 없게 여러 다양한 양상들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령세례의 영적 차원’만 강조하다 보면 몇 가지 문제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성령에 대한 조명을 성경 내용의 해석학적 연구에만 의존하고 인간의 신앙 경험의 차원을 간과할 경우,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영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이 간과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신자의 성령 체험이 성경의 영적 사실에 입각한 획일 된 양상으로만 일어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경의 영적 사실의 차원 위에서 다양한 경험적 적용을 일구어내는 작업에 노력해야 할 줄로 압니다. 적어도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복음적 성령운동의 확산과 건전한 성령 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배본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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