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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목사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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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천 교수 영성의 거목 이용도 목사의 영성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 가운데에도 많은 신앙의 영웅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의 신앙을 돌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일제시대의 탁월한 부흥사이자 영성가로 살았던 시무언(是無言) 이용도 목사(1901-1933)의 영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용도 목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독립투사로 헌신하다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선교사들이 강의하는 영어 신학과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 목사가 된 이후에는 전국적 부흥사로 활동하며 깊은 기도생활을 통해 영성의 길을 갔다.

 

이용도는 짧은 생애동안 다양한 서방기독교 사상가들의 가르침들을 접하였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의 참회록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외에 이용도는 그의 글에서 자신이 성 프란체스꼬(St. Francis of Assisi),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레오 톨스토이(Leo N. Tolstoy), 임마뉴엘 스웨덴보리(Emanuel Swedenborg), 그리고 일본의 우찌므라 간조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용도는 그들의 사상을 단순하게 따르지 않고 그들의 사상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내용들만 수용하였다.

 

이용도의 글들은 그가 자기부정의 영성, 예수와의 연합의 영성, 이웃 사랑의 영성,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의 영성을 실천했음을 나타낸다. 첫째, 이용도는 평양중앙감리교회의 담임목사직 청빙을 끝내 거절함을 통해 자기부정의 영성을 보여 주었다. 당시 경성지역의 교회학교 연합회 총무로 활동하던 그에게 평양중앙감리교회는 사례비의 두 배를 제안하며 거듭 청빙했지만 끝내 사양한 것이다. 그것은 사례비 문제를 넘어 이용도에게 다이빙 선수의 도약판 같은 영적 기회를 얻는 것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전국적 부흥사로 명성을 얻은 그에게 조선교계를 주도하는 평양에서의 목회는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용도는 기도 가운데 예수의 임재를 생생하게 체험했고 그 결과 예수와의 연합을 경험하곤 했다. 신학교 4학년 때 그는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기도를 올리려고 단 앞에 무릎을 꿇은즉 빌수록 주님 계심을 깨닫나이다. 보아라, 거기 서 계신 이를....” 셋째, 이용도는 전적인 이웃 사랑의 삶을 살았다. 이용도와 교제했던 피도수 선교사는 1930년 성탄절 이브에 이용도가 미국 영사관 담 밑에서 사는 거지 소년들을 돕기 위해 한 밤중에 담요를 들고 뛰어 나갔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시무언은 고기잡이 가는 소년처럼 껑충껑충 뛰었다. 따뜻한 방안에서 편안하게 쉬면서도 그는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이용도는 부흥회 사례비를 자신이 부흥회를 인도했던 지역의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언제나 가난하게 살았다. 넷째,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창조영성을 보여 주었다. 평생 성 프란체스꼬 닮기를 열망했던 그는 프란체스꼬처럼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까마귀를 사랑하였다.

 

이러한 이용도의 영성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그가 한국교회의 전통처럼 통성기도, 새벽기도, 그리고 산기도를 통해 기도생활을 했지만 그가 맺은 영성의 열매들은 2000년 교회사를 통해 표현된 전통적 영성의 열매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이다. 전통적 영성은 간단히 세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영성훈련, 영적 진보의 세 단계, 그리고 실천적 삶이다. 이용도는 매일 2시 반에 새벽기도를 시작함을 통해 수도자적 영성훈련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러한 깊은 기도를 통해 이용도는 영적 진보의 세 단계를 경험하였는데 그 단계는 정화, 조명, 그리고 연합이다. 특별히 이용도는 기도 가운데 예수의 영적 임재를 경험했고 그 예수와의 연합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용도가 경험한 예수와의 연합은 이타적인 삶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그는 까마귀마저 사랑했던 사랑의 화신으로 살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용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생명을 경험했고 자신 안에서 그 생명이 흘러 넘치는 것(롬 14:17)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 생명을 주는자(life giver)로 살았던 것이다.

 

김수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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