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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공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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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공인의식

현대인의 삶의 영역은 대부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사적인 영역의 활동은 전적으로 개인적 자유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의 건전한 질서와 안녕, 법과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한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제재 받지 않는다. 이런 사적 활동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 활동이고 신앙생활이다. 한 개인이 어떤 종교를 택하고 어떤 신앙생활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좌우된다.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거나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한 특정 종교가 타종교에 대해 극도의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종교적 전체주의에 해당한다. 지금도 이슬람 근본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이를 목격할 수 있다.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폭력을 행사해온 탈레반, 알카에다, 아이에스(IS) 대원들은 폭력과 억압을 행사하면서 개인의 사적 영역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란 바로 정치, 종교, 경제, 사상, 생활 모든 활동에서 사적 영역의 활동을 인정하고 보장해주는 사회체제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과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하루아침에 성취된 것도 아니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이제 자기중심적(egocentric) 단계에서 민족중심적(ethnocentric) 단계를 거쳐 세계중심적(worldcentric) 단계로 이행해가고 있다. 개인의 이기적인 활동이나 추구는 지탄의 대상이 되며, 민족적 자긍심을 갖되 한민족이 최고라는 생각의 울타리를 넘어 이제는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한 공동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기독교인들이 한국사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한번쯤 진지하게 짚어볼 사항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기독교인의 공인의식이다. ‘사인(私人)’에 비해 ‘공인(公人)’에게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쉽게 말해 공인의식이란 자신의 사적 행동을 공적 지평 위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라 하겠다. 집에서 혼자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철저히 사인의 사적 행동에 속한다. 그러나 사인인 한명의 교인이 교회나 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비록 그것이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공적 지평 위에서 평가받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성도가, 교회 직분을 가진 한 직분자가 교회나 사회에서 엉뚱한 일을 행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은 교회와 관련시켜, 나아가 전체 기독교와 관련시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의 경우는 더 하다.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한 개인의 사적인 문제인데 왜 교회와 기독교 전체로 확대해 해석하느냐고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분명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구별된 거룩한 사람’으로서 성도의 삶을 자의적 선택과 결정에 의해 시작했고, 신앙공동동체인 교회에서 공적 결정에 의해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의 직분을 받아 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발적인 신앙적 응답의 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때부터는 공적인 지평 위에서 생각하고 활동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를 개인적인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공적 의식을 가지고 행한다는 것이다. 사회 속의 신앙공동체로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터전이자 머리인 하나님 나라의 지상적 실체를 의미한다. 이 안에서는 사적인 이익추구나 사적인 활동이 활개를 쳐선 안 된다. 모두가 공인의식을 가지고 공동체의 이상과 가치, 건덕을 위해 사적인 것을 내려놓고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사적인 욕심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특히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목회자들 중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왜 그런가? 공인의식이 결여되어 잇기 때문이다. 공인의식의 회복을 위한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명수 교수/협성대학교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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