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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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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봄날은 간다?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봄날은 간다.” 가사가 애절하다. 가수가 한껏 감정을 살려 심금을 울리니 더욱 애절하다. 거리는 황사가 흩뿌옇게 서려있고 간간이 마스크를 쓴 낯선 풍경이 또한 낯설다. 언제부터 우리는 먼 사막과 산업도시에서 제트기류를 타고 날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에 몸을 움츠리고 살았는가.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외쳐불렀는데,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 봄은 어느덧 이렇게 가고 있는가. 노래는 “봄날은 가아안다~” 한풀이 하고 있는 듯하다.

T.S.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황무지>의 첫 행을 시작하고 있다. 전쟁의 포화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인간의 대지에 라일락이 피어오르는 것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 무슨 비극적 대조란 말인가.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포염과 라일락의 고혹적인 향기, 살인적인 무쇠덩어리 탱크와 연하디 연한 백색의 라일락 잎새. 극과 극의 대비, 생사의 경계가 한 끝에 맞닿아 있는 현존. 시인은 부조리한 실존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인의 고통. 인간 본연의 고뇌를 거부할 수 없었다. 준엄한 역사를 그렇게 유린한 장본인이 역사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인간 스스로였다니.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야 하는 일상의 순진무구함이 잔혹한 난장(亂場)으로 돌변해 가는 현실 앞에서 시인은 잔인하다 음률을 띄우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한(恨)민족이라 그렇게 애탄하게 봄날은 간다고 노래하는가.

올해 4월은 특별했다. 그리고 엄숙했다. 4·13 20대 국회의원 선거, 4·16 세월호 2주기, 4·19 민주혁명 56주기 등 이번 4월에 기념할 일이 많았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의 묵직한 권리 선언, 국민 앞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안타까운 국민적 애환의 사건, 국가 장래를 다시 세워야 하는 민주혁명의 국민적 소환. 4월의 봄은 결코 하릴없이, 하염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여느 노래가 울리듯, 4월의 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4월 끝물에 꽃잎은 비록 질지라도 사람은 지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은 꽃잎처럼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다. 4월이 당당한 제 품격을 되찾아야 하듯, 국민은 4월에 제 격(格)을 회수해야 한다.

신동엽은 이 4월에도 절규한다. “껍데기는 가라 /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사월이 오월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시각이다. 그렇다고 봄날은 결코 무의미하게 가지 않는다. 국민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껍데기들 봄바람에 날려보내고 4월은 생명의 봄날로, 화사한 잔치의 계절로, 국민적 축제의 계절로, 진정한 알맹이의 무게로 살아남는다. 그리하여 또 다른 봄을 기다린다. 봄은 가지만, 또다른 봄이 다가올 것이다.

추태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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