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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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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덕목

어느 단체나 집단이든지 좋은 지도자를 세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좋은 지도자는 공동체에 자신감과 새로운 꿈을 심어주어 공동체가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서며 서로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해준다. 반면 그릇된 지도자는 기존의 튼튼했던 공동체마저 허물어뜨리고 구성원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안겨준다. 그러니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지도자(leader)란 분명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이끌어가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따르는 자(follower)가 되도록 하는 요령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가미되어야 할 몇 가지 덕목이 있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 17장에서 네 가지 유형의 지도자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끄는 지도자이다(大上不知有之).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두고 한 말이다. 태평성대는 누가 왕인지 백성들은 알지 못하는데, 요순(堯舜)시대 백성들이 그랬다 한다. 그 다음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이 순종하고 박수를 치는 지도자이다(其次親而譽之). 첫 번째의 지도자 상은 너무 이상화되어 있어 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노자다운’ 지도자 상이라면 두 번째 지도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바람직한 지도자 상을 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노자가 말한 세 번째 지도자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지도자이다(其次畏之).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혼날 것 같고 불이익이 돌아올 것 같아 마지못해 인정하고 순종하는 경우이다. 이런 지도자는 분명 실패한 지도자임에 분명하다. 그런 지도자는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사람들은 잘 되었다고, 속 시원하다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최악의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경멸하는 지도자이다(其次侮之). 북한의 김정은이 이런 사람 아니겠는가. 아니 그는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 마음속에 차라리 죽이고 싶은 지도자, 괴물 지도자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이 붕괴되는 순간 첫 번째로 처형해야 한다고 아우성일 것이 뻔하다. 어쨌든 노자가 말한 지도자 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하고 유효하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지 않고 조용히 순리대로 이끄는 지도자,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그들의 인정과 지지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해나가는 지도자는 분명 훌륭한 지도자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현실, 특별히 기독교계의 참다운 지도자 상,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첫째 노자가 말한 것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지도자, 다시 말해 자기는 낮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높이 드러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초심을 잃고 세상에서 인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다 추한 꼴을 보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마치 자기 능력으로 물을 내는 냥 지팡이를 바위를 내려쳐 물이 솟아나게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드러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모세는 이 한 번의 실수를 범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그 결정에 철저히 순종한 순종의 지도자였다.

둘째,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도자에게 각각의 소임을 주신다. 그 소임을 다했으면 자신의 공로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맡기고, 조용히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된 것은 새 시대의 소임이 여호수아에게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자리를 깨끗이 내어준 데 있다. 개척하여 아무리 큰 교회가 되었다 할지라도, 교회성장에 지대한 공이 있다 할지라도 목회자 혼자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내세울 공로가 무엇이겠는가?!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지도자가 참 지도자이며, ‘케노시스’, 즉 ‘자기비움’이야말로 지도자의 참 덕목이다.

 

서명수 교수/협성대학교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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