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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에 표현된 사랑의 영성을 통해 생각해 보는 독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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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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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서에 표현된 사랑의 영성을 통해 생각해 보는 독신 문화

요즈음 우리 사회는 결혼 문화와 관련하여 비혼(非婚)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낯선 이 단어는 미혼이나 독신과 관련이 있는 단어이지요. 결혼할 의사는 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있는 미혼이나 독신과 달리 비혼이란 처음부터 결혼할 의사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미혼이나 독신이 결혼하지 않은 당사자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어휘라고 한다면 비혼은 훨씬 편안한 어휘이지요. 그것은 독신의 삶을 하나의 선택으로 수용하는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결혼에 대한 성서적 관점을 아가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아가서는 성서 가운데 독특한 책인데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구약의 지혜문학에 속하는 아가서는 문자적으로 볼 때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왕의 러브 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구약학자들은 그러한 관점보다는 육체적 사랑을 직설적으로 다룬 그 신학적 의도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왜 신의 아가페 사랑을 다루는 거룩한 성서에 인간의 에로스 사랑 이야기가 포함되었을까요? 그것은 결혼과 성은 창주주가 인간에게만 부여한 선물이자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친히 배우자를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을 이루라는 복을 주십니다. 결혼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이 최초의 결혼식에서 하신 주례사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은 동물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복이지요.

하나님에 의해 결혼과 성을 선물로 부여 받은 인간은 그래서 이성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강렬한지 아가서는 죽음보다도 강하다고 말합니다. 아가서의 주제는 아가서 8장 6-7절에 나타나 있지요. “너는 나를 도장[인장-seal]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 보다 더 강하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불길 같은데 홍수도 능히 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끌 수 없는 불은 없지요. 불보다는 물이 많기 때문이요 영원히 연소되어 그 불꽃을 유지할 물질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연인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다고 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심었을까요? 창조주이지요. 그런데 아가서 3장 11절은 그 사랑이 결혼으로 완성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유대인의 왕실 결혼 전통에서 결혼식 때 신랑의 어머니는 혼인에 대한 동의로 왕자에게 새로 만든 관을 씌워 주었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일부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독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 같네요. 대표적인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인 결혼의 축복은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결혼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공동체의 축제이지요. 이 공동체의 축복을 위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해야 할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신혼부부를 위한 더 많은 행복주택이 공급되어야 하겠지요. 젊은이들도 결혼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고 그래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거룩한 의무도 담당해야 하겠지요. 한 통계에 의하면 지금의 출산율이 이어질 경우 500년 뒤에는 대한민국은 인구가 하나도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 끔찍하네요. ... 결혼과 성에 대한 성서적 관점이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결혼 문화 정립에 도움이 되길 꿈꾸어 봅니다.

김수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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