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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영성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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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영성을 향하여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앞부분이다. 가을에는 어김없이 다형(茶兄)의 시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가을 하늘은 높고 높다. 구름은 마음껏 펼쳐져 하늘을 멋지게 수놓는다. 무더운 바람은 어디론가 자리를 내주고, 선선한 바람이 신선한 하늘가에서 불어온다. 가을은 옷깃을 여미게 하며 시선을 내면으로, 안으로 안으로 향하게 한다. 사람에게 가장 깊은 시선은 기도이다.

릴케는 가을에 어떠한 내면으로 세계를 바라보았을까. “주여 때가 왔습니다/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 마지막 과일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극의 햇살을 주시어, /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 잠자지 않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바람이 불어 가랑잎이 날릴 때, /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 전문).

릴케와 김현승은 동서양이라는 깊은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가을에서 만나고 있다. 릴케는 고독한 실존자로 가을 한 가운데 서있으며, 다형은 고독한 구도자로 가을에 들어서고 있다. 가을 들판은 추수를 앞둔 곡식으로 넉넉하지만, 시인의 영혼은 배고프다. 시인의 영혼은 스스로 채워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 점이 시인이 대지의 버림받은 자이자 동시에 대지의 축복받은 자로 설 수 있는 이유이다. 모든 인간 상황이 바로 그렇다. 인간은 죄인이자 동시에 의인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상황은 역전된다.

가을은 저주스런 실존과 축복의 은총 사이에 놓여있다. 싸늘한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고, 대지는 열매를 맺는다. 한기와 온기 사이에 사람은 서있다. 한기를 느끼는 사람은 고독한 실존에서 몸부림 칠 것이며, 온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대지의 축복에 감사할 것이다.

가을에 들어서는 모든 실존자들은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습니다. 무더위를 이겨내고 신선한 계절이 돌아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마지막 작열하는 태양빛으로 온갖 과실이 익게 하시고, 우리들 영혼도 결실하게 하소서. 가을이 다 지나기 전에, 추위가 성큼 다가오기 전에 몸과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집을 짓게 하소서. 그런 집을 짓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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