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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휴가, 나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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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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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에서 나와 취미가 비슷한 사람을 발견했다. 에디스 시트웰인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취미는 독서, 음악 감상 그리고 침묵이다.” ‘침묵’을 추가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침묵은 멈추는 것이다. 휴가의 계절, 우리의 휴가가 바로 이렇게 멈춤에서 시작된다. 전에 한 책에서 본 한자 해석도 기억난다. 바쁠 망(忙)자는 마음(心)과 죽음(亡)의 합성어이다. 바쁜 것은 마음을 죽이는 것이기에 쉼이 필요하다. 쉴 휴(休)자는 사람(人)에게는 나무(木), 즉 숲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쉬어야 한다. 실용적인 이유에서도 우리는 쉬어야 한다. 대나무가 그렇게 높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쉬면서 다시금 올라갈 힘을 모은다. 그 대나무 마디에서 힌트를 얻은 한 사람이 드럼통의 중간 마디를 만들어 약한 드럼통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실용적인 면이 휴가의 모든 의미는 아니다. 한자의 쉴 휴(休)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사람에게 필요한 나무(木)는 숲의 나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人)이 십자가(十)에 달린 사람(人)과 함께 있어야 인생이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람이 참된 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여가에 대한 우상화 현상에는 예수님의 세례가 필요하기에 한자 유희를 좀 억지로 해보았다.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여가의 의미는 일해서 번 돈으로 최대한 즐기면서 만족을 얻는다는 것 아닌가. 홍수와 같은 광고가 바로 그 경쟁적으로 쟁취해야 할 휴가의 서열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떠나라고 부추긴다. 이것이야말로 휴가의 우상화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이 세례 주신 휴가의 의미는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연관되어 있다. 창조를 마치신 후 일을 그치고 안식에 들어가신 하나님은(창 2:2-3) 오늘 우리가 안식하는 날도 복주셨다(출 20:8-11). 하나님이 안식하신 이유는 예배를 드리거나 육체가 쉬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결과를 즐기고 축하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아서 가지는 여가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런 창조와 연관된 아름다운 안식과 여가의 모습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달라졌다. 일중독, 여가 중독, 게으름, 끝없는 경쟁, 이런 것들이 바로 그런 왜곡된 여가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인류에게 진정한 쉼과 여가, 영원한 안식에 대해서 몸소 가르쳐주시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셨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안식 시스템을 직접 보여주셨다. 인류에게 진정한 쉼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다(마 11:28-30).

이런 의미에서 휴가는 일을 쉬면서 더욱 의미 있고 완전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해나가는 나눔의 미학이다. 나만을 위한 나눔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면 여가가 더욱 복되다. 지난 2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라이언 호웰 교수가 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해서 무엇을 살 때보다 같은 돈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돈을 쓸 때 느끼는 행복감이 더 크다고 한다. 핵심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인데 이런 나눔이 행복을 유발한다.

전도서에서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 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전 4:6)고 말하는데 두 손에 가득 채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은 아니다. 한 손에만 채우면 한 손으로 나눌 수 있다. 한 손에 가득 찬 것이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일을 멈추고 쉬는 휴가의 때에 잘 계획한 진정한 나눔을 행한다면 진정 복된 시간이 될 것이다. 늘 하듯이 바다로, 산으로만이 아니라, 휴식과 더불어 봉사와 나눔을 경험하는 기회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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